파스텔톤의 색면들은 허허롭지만 철학적이다.
간혹 세상을 유혹하듯 간지럽게 시적인 향기도 뿜어낸다.
화면 앞에서 말을 하면 이미 미감이 흐트러진다.'
철학적인 사변을 추상회화로 승화시킨 서양화가 서승원씨(66)의 작품 '동시성' 시리즈.40여년간 추상회화를 그려온 서씨의 작품전이 오는 12~28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
서씨는 1962년 엥포르멜(표현추상주의) 미학에 반기를 들고 홍익대 회화과 학생 9명과 함께 결성한 미술그룹 '오리진'을 통해 기하학적 추상작업을 해온 작가다.
'동시성'이란 타이틀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담백한 화면 위에 삼각형이나 사각형을 배치한 1960~1970년대 초기작품을 비롯해 기하학적인 선이 사라지는 1980~1990년대 작품,파스텔톤의 색면만으로 구성된 2000년 이후 근작 '동시대' 시리즈 등 모두 30점을 내놓는다.
반세기 동안의 작품 변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한국 현대추상미술의 맥락도 함께 살펴보자는 취지다.
서씨의 추상회화 '동시성' 시리즈는 인간과 자연의 '영원성'을 차분하게 붓질한 작품이다.
제목에서부터 철학적인 '무게'를 느낄 수 있는 데다 불교사상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까지 엿보인다.
예전에 즐겨 사용했던 삼각형 사각형 등 일체의 기하학적인 군더더기를 덜어낸 것도 선(禪)적인 분위기와 영원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다.
도형의 형태가 사라진 반면 색채는 한층 부드럽고 밝아졌다.
작품마다 현실과 이상의 기이한 변주를 통해 회화를 철학적이고 시적인 이미지로 풀어낸 것.
서씨는 올해 홍익대 미대 정년 퇴직을 앞두고 가진 이번 전시를 통해 "50여년간 명맥을 유지해 온 한국 평면 추상회화의 역사를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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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