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를 합쳐 통합기구를 만드는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로 가게 됐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 임명방식을 둘러싸고 독립성 훼손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이 위원 5명 전원을 임명하는 방식에 대해 방송계는 물론 야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방통위 설치 법안의 쟁점과 방통융합시대 과제 등을 짚어보기 위해 박종구 국무조정실 정책차장,허운나 한국정보통신대학교 총장,정윤식 강원대학교 신방과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정규재 논설위원의 사회로 좌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위원 임명방식 등에서 이견을 보였지만 방통융합이 국가적 과제인 만큼 통합기구가 조속히 출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법안에 대해 비판 여론이 거세다. 법안에 대해 평가한다면.

△허운나 총장=방송통신 융합은 세계적인 추세다. 방송과 통신을 관장하는 기관이 나뉘어 있어 효율이 떨어지니 합치자는 것이다. 이는 국가 미래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전문가로 구성된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가 석 달 이상 머리를 맞댔다. 합의제 행정기관이지만 효율과 추진력을 위해 독임제적 요소를 가미했다.

△정윤식 교수=핵심 쟁점인 위원 임명 문제를 제외하면 법안엔 큰 문제가 없다. 대통령이 전원을 임명할 경우 아무리 공정을 기해도 시비가 있을 수 있고 정치적 결정에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처럼 여당이 3명,야당이 2명을 추천하고 KBS 사장 등은 국회 동의를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 방송은 몰라도 통신은 독임제 아래서도 잘 운영돼 왔기 때문에 5명까지 필요 없다. 2명을 시민단체가 추천하도록 한 것은 묘수를 만들려고 고심한 결과이지만 뭐 하나도 잡을 수 없는 구조다.

△박종구 차장=공공성과 산업 진흥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기 때문에 완전한 독임제로 갈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독임제 요소를 가미한 합의제 행정기관이 바람직하다는 게 융추위의 건의였고 정부도 이를 토대로 기구설치법을 만들었다.

△사회=시민단체에서 상임위원 2명을 추천하도록 했는데 시민단체가 무리 없이 추천할 만큼 성숙돼 있다고 보나.

△박 차장=정확히 말하면 시민단체가 아니라 관련 단체다. 대통령이 책임을 갖고 임명하되 5명 중 2명은 대표성과 전문성을 감안해 필터링 과정을 거쳐 임명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그렇게 됐다. 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 절차나 위원 간 교차 임명,직무 독립성 및 임기 보장 등 보완 장치가 있어 법안이 담고 있는 시스템 상에서도 잘 순환될 것으로 본다.

△정 교수=관련 단체의 성숙도도 문제이지만 과연 대표성을 누구한테 줄 것인가가 문제다. 위원 숫자가 많다면 모르지만 학계만 해도 신문방송 분야만 관련 단체가 수십 개나 된다.

△사회=IPTV나 인터랙티브TV 등은 기술적으로 가능한 데도 우리 국민이 광범위하게 즐기지 못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상당한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은데 방송위 정통부의 인·허가 문제나 규제 강도가 달라서 안 되는 건가.

△허 총장=IPTV 기술 개발은 이미 끝났지만 규제가 이원화돼 시작도 못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다른 나라에서는 서비스를 잇따라 시작했다. 진입 규제는 없애고 문제가 있을 경우 사후적으로 강력하게 규제하면 된다. 내용이나 콘텐츠도 미리 심의하면 된다. 기업이 마음놓고 신기술을 상용화하고 테스트하게 하고 이를 통해 세계 표준으로 채택되도록 해야 한다.

△정 교수=통신사업자들은 망을 좋게 깔아놨으니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방송 서비스를 하고 싶을 것이다. 하나의 출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방송 쪽은 사정이 다르다.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제작비도 지금보다 3~4배가 든다. 문제는 수익원이 없다는 것이다. 시청료는 동결돼 있고 광고도 늘리기 어렵다. 돈줄이 막혀 있다. IPTV와 함께 미디어산업 전반의 재정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

△사회=콘텐츠를 가진 방송사들은 IPTV가 본격화되면 오히려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것 아닌가.

△정 교수=콘텐츠를 판매해 수입을 올리겠지만 제 살 깎아먹는 게 더 클 것이다. 통신은 방송에 비해 5배 이상 큰 시장이다. 영국의 경우 BBC는 수신료,일반 민방은 광고 수입,새로운 서비스는 유료로 가니까 충돌이 안 난다. 하지만 우리는 광고에서 충돌하게 돼 있다.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 파이를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지 않고는 구조 개편이 어려울 수 있다.

△사회=IPTV 서비스가 늦어지면 기업들 손해가 클 텐데.

△허 총장=그렇다. 정부가 확실히 밀어 준다는 비전이 있으면 기업은 과감히 투자한다. 하지만 불투명하니까 투자할 생각을 못 하고 있다. 통신 인프라나 콘텐츠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컨버전스 시대로 가는 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도약이다. 광대역 네트워크에서부터 장비 서비스 소프트웨어 등 가치 사슬이 형성된다. 정책이 무산되면 하루아침에 망할 수도 있다. 다 죽게 생긴 기업들을 살려 줘야 한다.

△박 차장=기구 설치 법안이 정리되면 다음 단계로 IPTV와 콘텐츠 문제를 우선 논의하기로 돼 있다. 방송위와 정통부가 공동으로 실시한 IPTV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융추위가 이른 시일 내 IPTV 관련 정책 방안을 논의해 정부에 건의안을 내놓을 것으로 본다.

△사회=통합 기구를 만들어 통합적인 이해와 일관된 정책으로 이해 관계를 풀어나가야 한 단계 도약할 텐데 낮은 단계에서 싸우는 것은 아닌지.

△허 총장=패러다임의 파괴가 필요하다. 과거 방식을 유지하면서 이익을 창출하긴 어렵다. 말로는 융합 시대로 간다고 하면서 자신은 그대로 남아 있길 바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기업은 디지털 융합시대에 맞게 빠르게 변신하고 정부는 제도 등을 마련해 변신 과정에서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 살아 남도록 방송도 디지털로 변환하고 미래지향적으로 가야 한다.

△박 차장=주변 환경은 방통융합 시대에 맞게 빠르게 디지털화하는데 아날로그적 체제를 유지하려는 사업자들이 있다. 새롭게 변신하는 데 비용이 들고 고통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적 추세다. 기존 발상을 전환하고 투자도 해야 한다.

△사회=통합기구 설립 법안이 무산되면 어떻게 되나. 미래 먹거리 창출 계획이나 힘들여 개발한 기술이 타격을 입게 되나.

△박 차장=현행 규제 감독 시스템을 유지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관련 부처 간 갈등과 이견을 조정하는 것이 통합 조직에서 하는 경우보다 훨씬 지연될 확률이 높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선제적 규제나 프레임워크,제도 정비가 안 된 상태에서 2010년을 맞이하면 정보기술(IT) 부문 2류 국가가 될 수 있다.

△정 교수=이번에 안 되면 1년은 그냥 가고 새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다시 위원회를 구성하고 하면 2년은 그냥 지나간다. 위원 임명방식 말고는 별 문제가 없기 때문에 적극적인 자세로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사회=방통 융합은 산업은 물론 정치적 문화적 측면도 갖고 있는 복잡한 문제다. 어떻게든 빨리 정리돼야 할 것 같다. 결정하지 않고 미적거리는 것은 안 하기로 결정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좀 더 빨리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박 차장=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그래야만 치열한 컨버전스 경쟁에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반도체 사례에서 봤지만 선점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서 그 차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진다.

△허 총장=방통 융합은 국가 미래 운명이 걸린 문제다. 지금도 늦었다. 위원이 몇 명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미래 먹거리 문제다. 정파 간 이해를 떠나 여야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컨버전스는 세계적인 화두다. 우리 IT 인프라가 세계 최고라고 하지만 앞으로 유비쿼터스 인프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세계 최초로 서비스를 시작한 DMB와 와이브로는 빨리 세계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지난해 3200억달러 수출 가운데 3분의 1이 IT 분야다. 우리나라는 디지털기회지수(DOI)에서 작년과 재작년에 1등을 했지만 내년에도 그러리란 보장이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게 경제 살리는 것 아닌가. 기업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

정리=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사진=김정욱 기자 ha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