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起澤 < 중앙대 교수·경제학 >

학기말 고사가 끝나면 이런 저런 이유로 학점을 상향 조정해 달라고 구걸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 이들도 구걸이 통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밑져야 본전이라는 계산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반대로 잘 나온 학점을 F학점으로 처리해 달라는 부탁도 있다. 심지어 4학년 2학기에 졸업을 앞둔 학생이 이런 부탁을 하기도 한다. F학점을 받으면 졸업 이수학점을 채우지 못해 학교를 더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업료를 또 내고 학교 다니는 게 좋아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음에 드는 취업에 실패한 경우인데,재학생 신분으로 다시 직장을 찾는 것이 졸업하고 찾는 것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대학 졸업생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3년간 우리 경제의 전체 일자리 창출을 보면 2004년 42만명에서 2005년에는 30만명으로,2006년에는 30만명 미만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는 경제성장률이 작년의 5.0%보다 낮은 4%대 초반으로 예상되고 있어 고용 창출 역시 작년에 비해 적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급히 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 확대에 나섰다. 작년에 11만명이던 재정사업 관련 사회 서비스 일자리를 올해는 20만명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기업이 창출하는 일자리와는 달리 이런 일자리는 계속해서 재정이 뒷받침하지 않는 한,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재정사업 관련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세금 인상이나 국채(國債) 발행을 통해 재원(財源)을 조달해야 하므로 민간 부문에 그만큼의 부담을 주게 돼 기업의 일자리 창출이 줄어든다.

일자리 창출이 줄어든 것은 최근 경제성장률 둔화가 주요 원인이지만 우리의 산업구조에도 그 원인이 있다. 우리 경제는 과거 수출 주도형 성장전략을 추구한 결과 제조업 비중이 높고 서비스업 비중이 낮았다. 그러나 경제가 성숙하면서 서비스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49.5%에서 2005년 56.5%로 증가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치인 68%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기간 제조업에서는 67만명의 일자리가 감소한 반면,서비스산업에서는 640만명의 일자리가 증가했다.

한편 매출액 10억원당 고용유발 계수는 2000년 기준으로 서비스업이 18.2명인 반면 제조업은 4.9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서비스산업 육성이 당면 과제이며,정부도 지난달에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을 내놓았다. 이 대책에는 교육,의료,관광 등 모든 서비스 업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들이 열거돼 있다. 기본 방향은 제조업에 비해 불리하게 돼 있는 서비스업에 대한 세제(稅制),금융,토지 이용 등의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이번 정부 대책이 우리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고용 창출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다. 왜냐하면 서비스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들은 보다 상위의 덩어리 규제들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나 출자총액제한제도도 서비스업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이지만,가장 큰 걸림돌은 세제를 포함한 부동산 규제다.

우리나라는 농업,산림,국방,환경 등의 이유로 토지 이용 규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가용(可用) 토지가 얼마 안 된다. 따라서 서비스업 투자에 필수적인 토지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올해부터 시행 중인 토지 양도소득세 중과로 인해 토지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다. 사업에 꼭 필요한 토지는 매입자가 66%나 되는 양도세를 부담하고 매입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저렴하고 경쟁력 있는 서비스 상품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대책을 마련해도,일반 국민들이 저렴하고 질 높은 서비스 상품 소비를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