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임제로 바꾸자는 헌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5년 단임제의 폐해가 큰 만큼 4년 연임제로 전환해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정책을 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노 대통령의 주장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적지는 않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이때…"라는 반응이 만만치 않다.

대통령 선거를 1년도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서 불거진 개헌론이 자칫 경제를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뜨릴 공산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경제 문제에 올인해야 할 정치권이 개헌 싸움에 몰두한다면 경제의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현행 5년 단임제는 대통령의 책임 정치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 전략 과제들을 일관성과 연속성을 갖고 추진하기 어렵게 한다"며 헌법 개정을 제안했다.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와 관련,"늦어도 4월 중순 또는 5월 이전에는 개헌 절차가 마무리돼야 하지 않을까 본다"고 말해 2월 중에는 발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최상위법인 헌법 개정은 권력 구조를 뿌리째 흔들 수밖에 없는 만큼 대선후보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다.

이 때문에 여·야 대통령 후보들은 정국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이해집단들의 갈등을 촉발하는 일마저도 서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1987년이 그랬다.

개헌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유리한 쪽으로 정국을 주도하기 위해 각계 각층의 욕구를 분출시킨 결과 임금과 땅값이 급등했고 물가도 올랐다.

1987년부터 1990년 사이의 임금 상승률은 노동생산성지수 상승률보다 무려 20%포인트 이상 높았다.

섬유 신발 등 수출을 주도해 왔던 경공업은 이때 급등한 인건비로 경쟁력을 잃었고 기업들은 고용 유연성을 상실했다.

개헌 정국으로 탄생한 '1987년 체제'는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눈부신 성과와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고비용 구조를 심어놔 10년 뒤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 집권 여당이 사분오열하고 있는 상태에서 노 대통령이 개헌 문제를 불쑥 던졌다.

고건 전 총리와 김근태 의장,정동영 전 의장 등 범 여권 대선주자들은 4년 대통령 연임제 개헌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한나라당은 "개헌에 대한 논의는 차기 정권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여기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등이 가세할 경우 개헌 문제는 계층 간·지역 간 갈등으로 번질 개연성이 크다.

대통령 연임제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실 정치에서는 대립을 야기할 수 있어 경제에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사회 전반의 효율과 형평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이해득실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기 때문에 상당한 사회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부)는 "경제가 어려워지는 마당에 이런 논의를 들고 나온 것은 최악의 타이밍"이라며 "대통령은 원포인트(4년 연임제) 개헌이라고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한국의 영토 문제나 복지 문제로까지 개헌 논의가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승윤·이심기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