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10일 발표한 '2008학년도 서울지역 외고 신입생 전형 개선안'은 시험문제의 난이도를 낮추고 내신비율을 높여 중학교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대입전형에서 고교 내신비율을 높이고 개별 학교가 출제하는 논술 등의 비중을 낮추라고 대학에 권고하는 것과 '판박이'인 셈이다.

○학교 공부만으로 외고 간다(?)

개별 학교가 독자적으로 출제했던 특별전형 구술.면접문제는 일반전형처럼 외고 공동으로 출제하고 문항수(10~13문항)도 수험생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축소된다.

반면 외고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이 흡수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히 했다. 일반전형에서 기존 4~15% 선인 내신반영률을 의무적으로 30% 이상 끌어올리도록 했고,학교성적우수자전형(특별전형)은 아예 별도의 시험없이 내신성적만으로 선발토록 한다. 영어듣기 문항은 중학교 교육과정 수준으로 출제된다.

이경복 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은 "외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학생들이 정규 수업과 방과 후 교육 등을 통해 진학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 외고들은 "이번 개선안이 합의된 것인 만큼 준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당장 학생선발 자율성과 변별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 외고 교장은 "(자율성을 억압하는) 그런 측면이 있지만 외고들이 다른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할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현재 외고 지원생들의 평균 영어실력은 토플(CBT) 260~270점 수준. 웬만한 고교생이나 성인보다도 낫다. 이런 학생들을 중학교 수준의 영어문제로만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한 외고 교사는 "그동안에도 아이들의 실력 차이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유학준비반을 겨냥해 들어오는 아이들까지 중학교 수준 문제로 어떻게 선발하라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사교육.외고열풍 더 거세질 수도

일부 전문가들은 오히려 사교육이 더 활성화될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했다. 기존 외고 준비생들은 내신의 반영비중이 미미해 중학교에서 상위 25~30% 이내에만 들면 외국어 실력에 따라 외고에 도전했다. 하지만 내신비중이 높아지면 현재 중3학생들부터 당장 내신에 '올인'해야 할 판이다.

외고 입시기관인 하늘교육의 임성호 평가실장은 "영어공부에 내신 부담까지 늘어나면서 중학교 내신시장을 겨냥한 사교육시장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 외고 교감도 "외국어에 재능있는 인재라기보다 전 과목을 두루 잘하는 아이들로만 외고를 채울 가능성이 있다"며 "외국어 영재를 육성한다는 외고 설립취지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개선안이 시행되면 전반적인 외고 응시인원은 오히려 늘어날 전망이다. 외국어 실력이 다소 처져 지원을 망설였던 상위권 학생들도 영어시험이 쉬워지면 대거 외고 입시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혜정·송형석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