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여년간 정보기술(IT)분야에 몸담아온 정홍식 LG데이콤 부회장(62)이 '한국 IT정책 20년'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정부가 수립한 정책과 이를 추진한 사람들에 대한 생생한 기록과 숨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일 출판기념 인터뷰를 가진 정홍식 부회장은 "국민소득 1000달러에서 1만달러를 넘어서던 시기의 생생한 기록을 통해 과거의 경험과 교훈을 전하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까운 자료가 없어질 것 같은 생각에 처음엔 자료집으로 만들려 했다"는 정 부회장은 "자료집을 만들다 보니 설명을 곁들여야 내용이 이해될 것 같아서 책으로 내게 됐다"고 겸손해 했다.

정 부회장은 한국 IT역사의 산 증인이다.

1979년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으로 일하며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전전자교환기(TDX) 및 반도체,컴퓨터 개발사업을 기획했다.

1989년에는 체신부로 옮겨 국가전산망조정위원회 사무국장과 정보통신국장을 지냈다.

1994년 출범한 정보통신부에서 초고속정보통신기획단장과 정통부 차관을 지내며 정보산업 육성정책을 주도했다.

"80년대 초에는 IT분야가 축복을 받지 못했어요.경제도 어려웠고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밀렸죠.하지만 많은 전문가와 기업인,공무원의 열정과 도전의식이 IT강국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반도체 산업을 예로 들었다.

"80년대 초 반도체산업 육성정책에 대해 반대가 많았어요.

거시경제를 담당했던 부처에서는 국제경쟁력이 없으니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죠.1984년 국내 기업들이 64KD램을 개발했는데 일본 기업들이 대규모 덤핑에 나섰어요.

반도체 산업이 어려움을 겪자 반대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고 전두환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했죠.그런데 1985년 금성이 1메가롬을,1986년엔 삼성이 1메가D램을 개발하면서 재검토는 없던 일이 됐어요."

책에는 '삼성이 D램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전두환 대통령이 "경제수석에게 지시해 이병철 회장에게 축하전화를 했다"는 내용도 기록돼 있다.

그는 체신부가 IT 주무부처가 되는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1989년 3월 노태우 대통령이 전산망조정위원회를 과학기술처로 이관하기로 결정했어요.그런데 2개월 후 체신부로 다시 바꾸었어요.5년 후 정통부의 출범을 예고하는 사건이었지요."

"1980~90년대 IT분야에는 혈기넘치는 해방둥이들이 많았어요.IT분야에서 세계 일류국가가 되어보자는 열정을 갖고 있었어요."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을 지낸 홍성원 전 시스코코리아 회장,행정전산망용 중형 컴퓨터 개발책임자였던 오길록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청와대 국방비서관 시절 '10만 IT 전문인력 양성'을 주장한 박재하 모토로라코리아 부회장,국산 전자교환기 TDX-10 개발을 주도한 박항구 전 현대시스콤 회장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일에 매달리다보니 가정에서는 점수를 따지 못했다고 말한다.

"주말도 못 챙기고 집안일도 돕지 못해 아이들과 아내에게 늘 미안했습니다. 이번에 책을 갖다 줬더니 당시 고생을 보상받은 것처럼 기뻐하더라고요."

정 부회장은 "80년대 국내총생산(GDP)에서 IT비중은 2∼3%밖에 안됐지만 지금은 15%를 넘는다"며 "IT분야가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방송 통신 융합 등 여러 현안들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