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 산둥성 칭다오의 중견 피혁업체 두 곳이 '야반도주'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현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수년 동안 칭다오지역에서는 춘절(春節·설)을 앞두고 연례행사처럼 야반도주 사건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신오피혁 신일피혁 사건 이전에도 칭다오지역의 두 개 중소 투자업체 사장이 적자를 견디지 못해 문을 닫고 서울로 '줄행랑'을 친 것으로 알려졌다.

칭다오뿐만 아니다.

광둥성 둥관,상하이주변 장쑤 및 저장성 등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지역에서도 한국 사장의 야반도주는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둥관의 경우 작년 춘절을 앞두고 무려 7명의 임가공분야 사장이 공장을 버리고 몸만 빠져나갔다.

장쑤성 쿤산의 한 중소 완구업체 사장은 직원 몰래 회사를 청산하려다 발각되자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피신하기도 했다.

이전에 발생했던 한국 투자 기업 사장의 줄행랑은 대부분 소규모 단순 임가공업체였다.

중국 종업원들의 피해가 그다지 크지 않아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일부 업체는 해당 지방정부의 묵인 하에 '협의 도주'길에 오르기도 한다.

지방 정부가 남아있는 공장시설을 팔아 직원들의 밀린 임금과 임대료 전기세 등을 처리하고,해당 업체 사장의 안전 출국은 보장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신오피혁 신일피혁의 경우는 매출 규모가 각각 4000만달러가 넘는 중견 기업이라는 점에서 이전 사례와는 크게 다르다.

피해 규모가 직원들의 밀린 급여 차원을 넘어 은행,세관,관련 업체 등과 연관됐기 때문이다.

중국계 은행이 이들 업체에 물린 돈 약 1400만달러를 비롯 세관에 380만달러가 체납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거래를 해오던 한국계 업체들도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서울 본사와 조직적으로 이뤄진 '계획도주'라는 점에서 충격을 더해준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신오피혁과 신일피혁은 본사 경영 상황이 악화되자 이를 보전하기 위해 중국계 은행에서 돈을 빌려 서울로 송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 본사가 부도를 맞은 시점에 이들이 야반도주했다는 게 이를 말해준다.

현지 한 관계자는 "물론 원자재가격 급등,수출가 하락 등 경영환경 악화도 한 요인이었지만 본사 경영 부실을 중국에서 메우려 한 게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며 "중국계 은행이 괘씸하게 여기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이 해당 지역의 다른 한국 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계 은행들은 한국 기업에 대한 대출금을 거둬들이는 한편 추가 대출을 규제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계 기업을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퍼져가고 있다.

해당 지방정부는 그동안 후불로 받아오던 전기세 수도세 부지임대료 등의 선지불을 요구하고 있다.

박환선 칭다오 주재 한국총영사관 영사는 "이번 일로 칭다오지역의 한국 업체 전체가 '악성 기업'으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며 "중국 투자 기업들에 새로운 형태의 '차이나 리스크'로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우덕 기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