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그레고리 펙과 프랭크 시내트라는 고추광이었고,지휘자 주빈 메타는 늘 성냥갑에 고추를 넣고 다닐 정도였다. 고추 없이 못사는 우리가 무색할 지경이다.

매운 맛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렇다. 고추의 주 성분인 켑사이신이 혀와 입의 신경을 자극하면 이 매운 통증이 뇌에 전달돼 신체의 모든 배수시설을 자극한다.

이 자극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콧물 눈물 땀이 나고 위장활동이 활발해지는데,이런 신체적 변화가 다시 뇌에 전달되고 뇌에서는 신체가 외부의 공격을 받았다고 판단해 엔돌핀을 분비한다는 것이다. 엔돌핀은 쾌감을 주므로 행복감에 젖어 계속 고추를 먹게 된다는 얘기다. 소위 '엔돌핀 이론'이다.

고추의 매운 맛을 따지자면 한국의 고추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멕시코 유카탄반도에서 재배되는 하바네라 고추는 우리가 가장 맵다고 하는 청양고추의 60배가 넘는다. 인도의 버드 아이,일본의 산타카,미국의 몸바사도 청양고추보다 훨씬 맵다. 그렇지만 우리 고추는 덜 매운 대신 달고 향기로워 1인당 하루 섭취량으로 보면 어느 나라 국민에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엔 고추가 임진왜란 당시 들어왔지만,원산지인 남미에서는 기원전부터 재배되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식용으로 쓰였지만 잉카족들은 매운 고추를 쌓아놓고 불을 질러 스페인 침략자들의 눈을 멀게 했는가 하면,'사랑의 묘약'으로 통한 고추가 성욕을 자극한다 해서 교도소 음식에서 고추소스를 제외하기도 했다.

이제는 고추성분이 항암제 등 신약개발의 총아로 각광을 받고 있다. 매운 맛을 내는 켑사이신이 암세포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영국의학연구소 티모시 베이츠 박사 등 여러 학자들이 잇따라 밝혀냈기 때문이다. 자극성이 있는 고추가 위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기존의 인식은 뒤집어졌다.

무엇보다 우리 음식의 주 재료인 고추가 암세포를 억제한다고 하니 반가울 뿐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