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횡포 때문에 중소기업이 망한다는 것은 억지 논리다."

MP3플레이어 아이리버가 세계 시장을 휩쓸면서 한때 '중소기업의 신화'로 불렸던 레인콤의 양덕준 사장은 아이팟(미국 애플의 MP3플레이어)의 히트와 삼성전자의 MP3플레이어 시장 진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남의 탓을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 2007'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찾은 양 사장은 지난 9일(현지시간) 기자와 만나 "내가 삼성전자 경영진이었더라도 MP3플레이어 시장에 뛰어들었을 것"이라며 "레인콤이 대기업과 같이 '자본의 룰' 안에서 경쟁하려고 했던 게 패인이었다"고 말했다.

양 사장은 '중소기업이 세계적 대기업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전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떻게 하면 성공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이제 확실히 알았다"며 "양적인 경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유통채널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지만 결국 독이 되어 돌아왔다"고 그는 덧붙였다.

양 사장은 "레인콤은 앞으로 양적 경쟁 대신 디자인과 기능에서 가장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회사로 '포지셔닝'할 계획"이라며 "브랜드 파워도 돈을 써서가 아니라 혁신적이고 독특한 제품을 개발해 키워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게 한국의 제조 중소기업이 갈 방향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디자인으로 유명한 덴마크의 전자회사 뱅앤올룹슨을 '롤 모델'로 꼽았다.

이 같은 레인콤의 전략 변화는 이미 실행에 옮겨졌다. 해외 사업을 대부분 정리하고 조직의 군살을 제거했다. 부채는 거의 없애 100억원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다. 엔지니어링도 완전히 새로운 제품 개발을 제외하곤 과감하게 외주로 돌리고 있다.

양 사장은 "이제 경영 상황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놨다"고 말했다.

이번 CES에서도 레인콤의 변화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레인콤은 막대한 돈을 들여 전시장에 부스를 설치하던 지난해까지와는 달리 전시장 인근 호텔방에 따로 공간을 마련,철저히 고객 중심의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AM OLED를 적용한 MP3플레이어,길찾기 기능을 넣은 MP3플레이어 등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대거 내놓았다.

양 사장은 "이미 실적 턴어라운드(흑자전환)가 이뤄지고 있다"며 "지난해 4분기 실적을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