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고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모처럼 속이 후련하다."

1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김성호 법무부 장관과 조찬을 마치고 나오던 기업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얘기들이다. 한 참석자는 "그동안 참여정부 장관들과 여러번 만났지만 오늘처럼 즐겁고 마음 편하게 얘기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김 장관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마련됐으며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기업하기 좋은 법제환경 구축'을 일관되게 강조해온 김 장관에 대해 재계가 사의를 표하는 의미도 담겨있는 만남이었다. 동시에 전임 천정배 장관 시절 입법예고됐던 상법개정안의 일부 반기업적 조항이나 경영활동을 제약하는 여러 규제들에 대해 재계가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자리이기도 했다. 김 장관 역시 "기업 일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전경련의 초청에 흔쾌히 응한 터였다.

○김 법무-재계 '이심전심'

기업 관련 법무부 정책방향에 대한 김 장관의 대략적인 설명이 끝나자 참석자들의 질문과 각종 건의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남영선 ㈜한화 사장이 "상법 개정안에 포함돼 있는 이중대표소송 제도가 도입될 경우 기업들의 진취적인 도전의욕이 약화되는 등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어 이종희 대한항공 사장이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공력을 허비하지 않도록 관련 주식법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히자 김준호 SK㈜ 부사장은 상법개정안 중 '회사 기회의 유용금지' 조항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 독소적 내용들을 지목한 것으로 참석자들은 전했다.

김 장관은 즉답이나 확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상법 개정안의 경우 경제계나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고 현재 법무부 내에 구성한 상법 쟁점 조정위원회를 통해 2월까지 최종적인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김 장관 발언의 무게중심은 재계의 목소리에 실려있는 분위기였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법무 장관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꼭 집어 얘기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하지만 장관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었다"고 나름대로 기대감을 표시했다.

○현대차 "원칙 고수해야"

새해 벽두부터 파업을 예고해놓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노사관계에 대해서도 말이 나왔다.

박정인 현대차 부회장은 "시무식부터 벌어진 소란으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회사측은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법과 원칙을 고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노사관계는) 원칙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선에서 자신의 의견을 에둘러 밝혔다. 듣기에 따라선 노조의 강경투쟁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는 '조언'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뉘앙스였다는 지적이다.

김 장관은 이날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기업하기 좋은 법적 환경 조성에 참고할 만한 말씀을 많이 들었고 앞으로 경제관련 법률을 만드는 데에 참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는 강신호 전경련 회장을 비롯해 김영대 대성그룹 회장,경청호 현대백화점 사장,조해형 나라홀딩스 회장 등 전경련 내 경제정책.기업정책위원회 소속 기업인 30여명이 참석했다.

조일훈·김동욱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