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 왕따 당한 유대인 에릭 홉스봄.최고의 마르크스주의 학자지만 자신의 저서가 소련에서 판매 금지됐고 유럽의 동료들 사이에서도 별종 취급을 받았다.

케임브리지 대학생 때 입당까지 한 골수면서 공산주의 경직성을 가차없이 비판하고 역사 연구에서 이념을 먼저 내세우지 않는 성향 때문이었다.

이집트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고아가 돼 13세 때 영국으로 건너온 코스모폴리탄.90세 석학의 개인사는 고단했다.

하지만 학문적 평가에는 예외 없이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정치와 경제,예술을 넘나드는 뛰어난 업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 마르크스주의 저술가,좌우 모두의 호평을 받는 균형 잡힌 시각의 소유자로 불린다.

'혁명''자본''제국''극단'으로 이어지는 '시대 4부작'으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그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이희재 옮김,민음사)를 펴냈다.

홉스봄은 이 책에서 20세기 정치 상황과 맞물린 삶의 궤적을 파란만장하게 그리고 있다.

지적 유희에 빠져 있던 소년시절 재즈를 통해 체험한 '절대감성'과 히틀러의 대안으로 선택했던 공산주의의 '집단 황홀경'에 대한 미학적 감동을 여과없이 고백한다.

프랑스 인민전선의 총선 승리가 불러온 거리의 환희 등 추억의 장면이 생생하고 소련 스파이,버트런드 러셀,체 게바라,칠레의 아옌데 대통령과의 조우도 인상적이다.

그에게 역사를 이끌어 온 주체는 익명의 존재들이었다.

때문에 이 책에는 파워그룹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평생 주류에 반대하는 길을 걸었고 못 배운 노동자나 보통 사람들에게 쏟은 홉스봄의 정치적,학문적 관심이 그대로 녹아 있다.

또한 그에게 역사는 세계 변화의 메커니즘을 찾는 도구이기도 했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혁명은 모두 종결된 꿈이다.

그러므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든 다른 방식의 사회를 희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692쪽,2만5000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