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여자들은 '멀티태스킹(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잘한다고 하잖아요.

전 아이를 키우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15초마다 뭔가 일이 터지더군요.

여자들이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레 멀티태스킹 능력이 생긴 거죠." "첫 아이 출산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갔더니 협상능력 집중도 등 저의 업무 능력이 엄청나게 향상됐다는 걸 발견했어요.

힘들지만 아이를 키우는 건 놀라운 경험이에요.

키워보니까 더 낳고 싶어 아내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지역 공립 보육시설(dagis).학부모 회의에 참석한 아빠들의 '육아 토크'가 한창이다.

회의에 참석한 부모의 절반 이상은 남자다.

두 살짜리 딸을 이곳에 맡기고 있는 얀 헨릭슨씨는 "아내의 수입이 훨씬 많기 때문에 부모 휴가 대부분을 아빠인 내가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게 더 합리적이라는 것.

○남편 출산휴가 의무화

스웨덴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480일의 '부모 휴가'(우리나라의 출산휴가)가 주어진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이 휴가를 다 쓸 수가 없다.

60일은 반드시 배우자(통상적으로 '아빠의 달'로 불림)가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의 육아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1995년부터 시행된 법이지만 지금은 헨릭슨씨처럼 남자가 휴가의 대부분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4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토머스 크리샨씨는 "우리 아버지 세대들에겐 남자가 부모 휴가를 쓴다거나 학부모 회의에 참석한다는 게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며 "아버지는 내가 아이들을 직접 키우는 걸 보면서 은근히 부러워하는 눈치"라며 웃었다.

스웨덴에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따로 없다.

하지만 유럽 평균(1.5명)보다 높은 1.8명의 출산율을 자랑한다.

즉석에서 이뤄진 30분간의 '아빠 간담회'는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바로 철저한 남녀평등 정책이 답이다.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직장일과 육아를 나눠서 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가 '거의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예를 들어 60일의 '아빠의 달' 외에도 남자는 아이 출산시 10일의 유급 출산 휴가를 추가로 사용할 수 있다.

또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60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데 남자가 이를 사용하는 것도 보편화돼 있다.

보육시설의 아빠들은 하나같이 "아빠와 엄마 중 누가 아이를 키우고,아픈 아이를 돌볼 것인지는 부부 간 선택의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여성들 출산휴가 후 복직으로 보호

사실 남녀 평등 정책은 1970년대 초 경기 침체기에 여성의 사회 참여를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스웨덴 역시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였다.

스웨덴 보건사회부의 크리스티나 렌홀슨 사회보험 담당관은 "출산과 보육 때문에 직장 생활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목표로 정책이 추진됐고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취업률이 오르고 출산율도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현재 스웨덴 여성들의 출산율은 78%며,이런 직장생활로 얻은 안정적인 살림살이 덕분에 출산율까지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높아진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그러나 스웨덴의 직장 여성들은 부모 휴가 후에 출산 전과 같은 포지션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법으로 보호받는다.

부모 휴가 기간에도 390일은 봉급의 80%를,나머지 90일은 하루에 18유로씩 지급받는다.

아이가 돌만 지나면 나라에서 육아를 책임지는 것도 큰 장점이다.

스웨덴의 보육시설 중 75%가 공립시설이다.

지방자치단체는 마을에 보육시설이 모자랄 경우 새로운 시설을 세워서라도 부모의 신청 후 3개월 이내에 아이를 맡아줘야 한다.

○시험관 시술 무료 지원도

1947년 도입된 아동 수당(child allowance)도 여성의 사회활동과 출산율 증가에 큰 도움이 됐다.

가정의 경제력에 상관없이 아이가 16살이 될 때까지 한 달에 950크로나(약 12만원)가 지급된다.

아이가 둘 이상이면 누진제가 적용돼 수당이 더 늘어난다.

물론 스웨덴이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고 직장을 구한 다음에야 아이를 낳다 보니 첫 아이를 출산하는 평균 연령이 29세로 늦다.

그래서 불임도 많다.

스웨덴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임도 일반 질병으로 분류,세 차례의 시험관 아기 시술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국립보험청의 캐린 울프씨는 "이 같은 출산·보육 지원에 엄청난 재원이 소요되고 이는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지만 조세 저항은 거의 없다"며 "지난 10월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 정권도 출산·육아에 대해서만큼은 재정적 지원을 줄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고 말했다.

스톡홀름(스웨덴)=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