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리사의 법정소송대리 참여 여부를 둘러싼 변리사업계와 변호사업계의 해묵은 논쟁이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변리사도 변호사와 함께라면 일반 법정에서 소송대리로 나서 변론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이 국회에 처음 제출됐기 때문이다.

변리사업계는 입장관철을 위해 '총대'를 맬 임원진을 최근 개편하는 등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변호사업계는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최철국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변리사법 개정안'은 변리사가 변호사와 공동으로 특허침해 소송에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할 수 있게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변리사는 특허법원 사건과 특허법원 판결에 대한 대법원 상고 사건에 한해 법정에 설 수 있다.

특허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소송 등 일반법원의 민사소송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이번 개정안은 따라서 변리사가 일반 법정에도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대신 절충안으로 변리사 단독은 안되고 변호사와 공동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이에 대해 변호사업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대한변협 신현호 공보이사 대행은 "변호사법과 민사소송법상 소송대리는 2년의 사법연수원 과정을 수료한 변호사만이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다"며 변리사의 소송대리권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법원도 특허법원을 제외하고는 변리사가 작성한 소장을 받아주지 않고 있다.

변호사업계는 변리사의 소송대리를 허용할 경우 소액사건은 법무사가,세무관련 소송은 세무사,노무관련 소송은 노무사,부동산 관련은 공인중개사가 맡게 될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이다.

중형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법률행위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인데 변리사들의 주장은 마치 간호사가 '간단한 수술은 의사를 대신해 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변리사업계는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었다.

강경파 변리사들은 "변리사법 8조에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에 관하여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어 변리사의 소송대리는 지금도 가능하다"며 "개정안은 변호사와 공동으로 해야만 법정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사실상의 후퇴안"이라고 반발했다.

대한변리사회도 국회에 제출한 공식의견서를 통해 "변리사의 '단독 소송대리'가 관철돼야 한다"며 개정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외양상으로는 변호사업계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러나 온건파는 명분보다는 실리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개정안이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과 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한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 등 과학기술계의 입법청원에 따라 제출된 사정을 감안해 수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학기술계는 지난달 성명서를 내 "변리사의 소송대리권 인정은 과학기술계의 오랜 숙원이며 공동대리를 허용하는 만큼 변호사의 업무영역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며 법안 통과를 요청한 바 있다.

통상산업부 장관과 특허청장을 지낸 안광구 대한변리사회 회장도 "지식재산권이 국가경쟁력이 되는 특허전쟁의 시대에 특허소송은 기술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며 "변리사의 소송대리는 전면 허용돼야 한다"고 일전불사의 의지를 내비쳤다.

안 회장은 "발명가 등 과학기술계나 기업 등 특허소송 서비스의 수요자들이 공동으로라도 변리사의 법정대리를 요구하는 만큼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변리사회는 최근 임원진 개편을 단행한데 이어 16일 이사회를 열어 개정안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특허업무를 하려는 변호사가 변리사회에 등록하지 않아도 된다는 개정안 내용도 논란거리다.

변리사업계는 "지난해 법 개정을 통해 변리사회가 법정단체가 되고 모든 변리사는 반드시 특허청 등록과 변리사회 가입을 의무화했으나 시행 6개월 만에 이를 무력화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변리사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도 상정되지 못했다.

변호사 출신 의원의 반대 때문으로 알려져있다.

새해 들어 본격화되고 있는 변리사업계와 변호사업계의 대립이 어떻게 결론날지 주목되고 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