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느닷없이 찾아온 외환위기(IMF) 사태는 우리사회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늙어 퇴직할 때까지 고용을 보장할 것 같았던 직장도,언제까지나 포근한 휴식처가 되어줄 것 같았던 가정도 외부 환경의 변화로 한순간에 풍비박산이 날 수 있음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1985년 등단한 작가 권태현씨의 두 번째 장편소설 '길 위의 가족'(문이당)은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만 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시대 가족이 처한 보편적인 위기를 말하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얘기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뚜렷이 하기 위해 작가는 문장에 색깔을 입히지 않은 채 단순한 구성을 택했다.

"이야기의 힘만으로 가족이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니던 주인공 민시우는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면서 명예퇴직을 당한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사업을 시작하지만 이마저도 부도를 맞고 빚더미에 앉게 된다.

가족이 함께할 집 한 칸도 마련하지 못할 처지에 놓인 시우는 식구들을 친척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노숙하는 처지가 된다.

전업주부였던 아내 지은은 학습지를 돌리며 생활비를 벌어 보려고 노력하지만 상황은 버겁기만 하다.

여기에 고등학생인 큰 아들 석진은 툭하면 싸움질에 오토바이 폭주족까지 되어 말썽을 일으키고 중학생인 둘째 다예는 손버릇이 나빠져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잡히고 만다.

막일로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던 시우는 노숙생활에 점점 지쳐가고 아내 지은의 이혼요구에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소설가 이순원씨는 "권태현 소설은 재미있게 잘 읽힌다.

읽다 보면 어느 결에 소설 속 인물들의 삶과 생각이 내 것처럼 다가온다.

그들이 이 살얼음판 같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함께 조마조마해진다.

그러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돌아서서 기댈 곳은 '가족'밖에 없다는 사실을"이라고 평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