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횡령 및 배임 혐의에 대해 검찰이 6년형을 구형함으로써 최근 노사문제, 환율 위기, 경쟁업체의 공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기아차 그룹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했다.

더구나 고위층 임원이 2003년 당시 노조위원장에게 2억원이나 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돈을 '노조무마용'으로 건넨 것으로 드러나 도덕성마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침체에 빠진 내수와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격화를 이겨내기 위해 뛰어가도 모자랄 판에 회사 내부의 온갖 악재가 한꺼번에 터져나옴으로써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정 회장 구형 소식에 양재동 사옥 '침통' = 정 회장이 회삿돈 1천억여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2천100억원이 넘는 손해를 끼친 혐의(특경법의 횡령 및 배임)에 대해 검찰이 6년형을 구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대차 본사가 있는 양재동 사옥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직원들은 정 회장의 유죄가 기정 사실로 드러난 마당에 어느 정도의 형량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최근의 상황을 감안, 구형량이 다소 낮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갖고 있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요즘 환율하락과 내수침체로 경영여건이 좋지 않은데다 성과급 50% 추가지급 문제로 노조가 파업까지 벌여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인 점을 검찰이 고려해주기를 기대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더욱이 정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내수침체, 환율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 등 그룹이 처한 어려움을 '공격경영'으로 이겨나가자며 글로벌 경영안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한 터여서 직원들이 체감하는 위기의식은 컸다.

직원들은 다가올 선고공판에서는 형이 누그러질 것을 기대하며 정회장이 집행유예로 나와 짐을 털고 경영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랬다.

한 임원은 "현재 경영환경은 회장이 동분서주해도 어려운 형국"이라며 "잘못한 부분을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만큼 법원이 선처해 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 노조에 뒷돈..'도덕성' 시비마저 = 울산지검 특수부는 이날 이헌구 전 현대차 노조위원장이 2003년 위원장 재임시절 현대차 고위 임원으로부터 임단협 협상을 잘 진행해 달라는 요청과 함께 2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했다.

이번 사건은 회사측이 노조를 무마하기 위해 비자금으로 조성된 돈 중 해마다 거액의 돈을 쓰고 있고 노조 간부들도 회사측으로부터 향응과 '용돈'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사실로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노조나 회사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안긴 것으로 평가된다.

더욱이 이 사건은 비자금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지 1년도 채 안돼 터져나와 현대차의 비자금 관행에 대해서도 의심이 모아지고 있다.

돈을 건넨 임원은 개인적으로 배임증재에 대한 공소시효(3년)가 지났기 때문에 처벌대상은 아니지만 여론의 따가운 질타가 이어질 경우 현대차는 또다른 도덕성 시비에 휘말릴 공산이 크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고위 임원이 노조위원장에게 돈을 건넨 것은 비난받을 사안이지만 당시 회사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관행이었다"면서 이해를 구했다.

◇ 경영위기 고조 = 현대차는 연초부터 불거진 노조의 '성과급 50%' 추가지급 요구로 막대한 생산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계속되고 있는 잔업 및 특근 거부에 15일 8시간 부분파업(교대별 4시간씩)까지 겹쳐, 지금까지 1만7천997대의 차량 생산이 중단됐고 2천674억원의 누적 손실을 기록중이다.

노사가 16일 대화를 재개했다고는 하나 성과급 추가지급, 조건없는 손배소 등 취하를 요구하는 노조와 소송 취하 불가, 추가 지급 불가 등으로 버티는 회사측간의 대화 간극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노사갈등이 지속되면서 생산차질이 장기화될 우려가 높고 내달 선출될 신임 집행부마저 정치색 짙은 강성노조로 꾸려질 가능성이 있어 올 한해 현대차의 노사문제는 불안하기만하다.

게다가 해외시장에서는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전략시장에서 외국 경쟁업체의 '현대차 추월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 수입차 시장에서는 2년간 지켜온 1위 자리를 지켜온 현대차는 1년만에 3위로 미끄러졌고 혼다, 도요타, 르노삼성, GM은 인도와 중국시장에서 잇따라 막대한 투자계획과 마케팅 강화전략을 내놓으며 현대차를 압박하고 있다.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는 원화가치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이 낮아져 판매고가 둔화되고 있다.

원.달러환율이 10원 떨어질때마다 1천억원의 환차손을 입는 현대차는 올해 달러당 원화가 800원대까지 떨어질 경우 앉은 자리에서 수천억원의 손실을 감내해야 할 처지다.

이 때문에 현대차의 올해 경영목표는 이미 물 건너 간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현대차는 연초 국내외에서 작년보다 23만대 늘어난 273만5천대를 판매해 42조원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내수 목표는 63만대(작년 58만2천대), 해외수출 108만5천대(103만5천대), 해외생산은 102만대(88만4천대)로 잡아논 상태다.

더욱이 작년 환차손으로 적자를 기록한 기아차 역시 올해도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어 그룹 전체로 경영난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강철구 이사는 "현대.기아차는 앞으로 1, 2년이 고비가 될 것"이라며 "이 어려움을 노사화합, 강력한 리더십, 적극적인 품질제고 노력으로 이겨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염려했다.

(서울연합뉴스) 유경수기자 y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