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이른바 '담합기사'의 사례로 든 '국가비전 2030에 부응하는 건강투자전략'은 노 대통령이 말했듯 '기자실에서 죽치고 앉아서 기사를 가공하는 담합 기자들' 때문이 아니라 '보도자료 자체가 부실'했기 때문에 폄하됐다는 지적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브리핑을 위해 기자실에 나타난 것은 15일 오전 11시.그는 향후 보건의료정책의 방향을 '의료비 지출'이라는 사후적 대응에서 '건강투자'라는 사전적 조치로 전환하겠다며 건강투자전략을 설명해 나갔다.

그러면서 보도자료 외에 △국가비전 2030에 부응하는 건강투자전략 보고서 전문 △건강투자 전략추진사업 개요 △장관님 브리핑 주요 내용 △임신여성에 대한 건강투자:임신 토털케어 보험급여 등 모두 5종류의 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이들 자료의 어느 곳을 뒤져봐도 건강투자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나 사업진행 일정,소요예산 추계 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연령대별로 이런저런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는 큰 방향을 소개한 정도였다.

그나마 복지부가 강조한 임신~출산 검진비 무료제공 계획에도 어떤 항목이 현재 무료로 제공되고 어떤 항목이 추가될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추가 자료 제공을 요청했지만 오후 3시에도 담당자들은 보험급여 대상으로 이것을 집어넣어야 할지,저것을 집어넣어야 하는지 갑론을박하고 있었다.

당연히 다른 사업은 거론조차 필요없을 정도였다.

왜 이런 부실한 자료가 발표됐을까.

자료생산부서의 한 공무원은 "2008년도 예산배정안을 논의할 재원배분회의를 앞두고 복지부 복지의료정책의 방향을 이런 식으로 가져가겠다는 방향을 보여주기 위한 자료"라며 "기사 쓰기에 어렵겠지만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자료를 만든 공무원조차 기사를 쓰기에 힘든 부실한 자료임을 인정한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좋은 정책이 '대선용 선심정책'으로 폄하됐다"고 지적한 것과 관련해서도 그런 해석은 유시민 복지부 장관 스스로 유도했다는 지적이 많다.

유 장관은 브리핑 시 "대운하를 만들고 일본과의 해저터널을 놓는 게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냐"며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국민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야당 대선주자들의 공약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 발표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당황한 복지부 실무자들이 "장관님이 불쑥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선거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서둘러 해명까지 해야 했을 정도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