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단행된 삼성그룹 인사의 특징은 '비교적 평온'이다.

최고경영자가 바뀐 계열사는 4개사였고 옷을 벗은 사장은 3명에 불과했다.

큰 틀에서 보면 이학수 부회장(전략기획실장)과 윤종용·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 유임되는 등 그룹 수뇌부 면모를 일신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전략기획실 내 고참 팀장들도 대부분 자리를 지켰다.

변화와 개혁보다 안정 속의 성장을 중시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만 떼어놓고 보면 이번 인사는 태풍급이다.

애니콜 신화의 주역이자 삼성의 간판 경영자였던 이기태 정보통신총괄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대신 해당 사업부를 떠나게 됐다.

이 부회장 후임에는 최지성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이,최 사장 후임에는 박종우 디지털프린팅 사업부 사장이 연쇄적으로 자리를 채웠다.

또 이현봉 생활가전총괄 사장도 서남아 총괄 사장으로 해외에 나가게 됐다.

반도체 총괄(황창규 사장)과 액정표시장치(LCD) 총괄(이상완 사장)을 제외한 모든 사업부의 사령탑이 교체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경영진을 대폭 개편하고 나선 것은 매출 1000억달러 달성을 향해 달려가는 거대조직에 새로운 인물과 바람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령탑이 바뀐 정보통신총괄과 디지털미디어총괄의 경우 대체로 '글로벌 톱' 수준에 올라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반도체총괄 만큼 확실한 '톱'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 회장의 판단이다.

최지성 사장이나 박종우 사장은 이 회장이 주창하는 '창조경영'의 실행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현봉 생활가전 총괄 사장을 서남아총괄 사장으로 내보낸 것은 인도를 포함해 서남아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한 인사로 풀이된다.

삼성 관계자는 "북미 유럽 중국에 이어 서남아까지 사장급을 해외총괄 사장으로 내보내게 됐다"며 "이제 인도에 '제2의 삼성'을 건설하는 작업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 회장은 이학수·윤종용 부회장에 대한 유임 인사를 통해 삼성을 글로벌 톱으로 이끌어온 현재 진용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60세가 넘는 연령 등을 이유로 퇴진 가능성을 점쳐온 분위기였지만 이 회장이 생각하는 인선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기여도를 포함한 글로벌 역량과 축적된 경험이라는 점이 이번에 드러난 것이다.

조일훈·이태명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