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외환위기의 깊은 수렁에 빠져있던 1998년 초 남양유업은 180억원의 차입금을 모두 갚으면서 '무차입 경영'의 행군을 시작했다.
무차입 경영은 1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곳간에 5000억원대의 사내 유보금을 쌓아놓게 됐다.
올 연말 준공 예정인 전남 나주 공장에 750억원을 쏟아붓고 있지만 자금전선엔 전혀 지장이 없다.
무차입 경영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사옥,무분규,무파벌,무계열사라는 무(無)경영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남양유업을 업계에선 '5무 기업'이라고 부른다.
남양유업은 5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유보금을 갖고 있으면서도 본사 사옥이 따로 없이 창사 이래 43년 동안 줄곧 세들어 사는 회사로 유명하다.
품질 개선 등 필요한 곳에는 과감하게 투자하지만,부동산 등 정도 경영과 벗어난 데는 단 한푼도 투자하지 않는 일면을 보여 주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주변에서 부동산 투자와 사내유보금의 활용을 권유했지만,눈도 꿈쩍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건호 대표는 "외환위기 때 파이낸스 센터 등 대형 빌딩 소유주 여러명이 인수를 타진해 왔다"고 회고했다.
기업들의 골칫거리가 될 수 있는 노사분규도 이 회사에선 '다른 나라 이야기'나 다름없다.
일찍부터 품질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본사보다는 공장을 우대하고,정년을 보장해 주는 등 사원들을 끌어안으려는 경영진의 배려 때문이다.
노사가 똘똘 뭉친 결과 유수 기업들이 쓰러지던 1997년에 오히려 20% 성장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남양유업은 오너 일가의 친인척이 없는 회사로도 유명하다.
'무파벌'이다.
이 또한 창업 이후 전해 내려오는 경영원칙 중 하나.
인사청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분위기는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어 일할 의욕을 고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남양유업은 '한우물 경영'의 기업철학을 바탕으로 단 한 개의 계열사도 두지 않은 채 오직 유가공과 식품으로 1조원 클럽 진입을 앞두고 있다.
'무계열사'다.
회사에선 '한눈 팔면 죽어요'라는 공감대가 줄기세포처럼 형성돼 있다.
내년 중 1조원 클럽에 가입할 것이란 게 회사측 설명.
남양유업이 새해 벽두부터 또 하나의 '없음'을 내걸었다.
바로 난제 중에 난제였던 사카자키균을 완벽하게 없앤 것이다.
지난해 9월 국내 업체의 조제분유에서 사카자키균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국산 유제품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4개월간 '무균화'작업에 나서 목표를 달성한 것.이로써 남양유업은 '무경영'의 범주에 '무 사카자키균'을 추가,종전 '5무 경영'에서 '6무 경영'회사로 업그레이드됐다.
남궁 덕 기자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