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주 옛 그레이스백화점 회장의 로비파문에 대한 수사가 검찰내 고위간부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꼬리를 물고 있는 의혹이나 그의 인맥 리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화려한 면면만으로도 어물쩍 넘어가기는 어려운 일이다.

청와대 검찰 국세청 감사원 금융감독원 정치인 등 끗발있는 권력집단에 그치지 않고,연예계까지 뻗쳤다는 그의 마당발 인맥이 무엇보다 놀랍다.

특별한 지연이나 학연과 무관해 보이는 그가 어떤 능력으로 이 같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관리했는지,물론 돈의 힘이었겠지만 돈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사랑을 실천하는 형제들의 모임'이나 '45인회'라는 이름부터가 그렇다.

'착하게 살자'는 조폭(組暴) 냄새까지 풍기고 무슨 비밀결사처럼 들리기도 한다.

멤버들 주민등록증 까서 모두 형님·아우로 불렀다는 이들의 알려진 행태 또한 기가 막힌다.

지난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이 그에게 유력 정치인의 사무실 임대료를 대납케 하는 대신 인사청탁을 받고,모임의 '형제'들이 김씨의 상호신용금고 인수를 위한 전방위 로비와 부당대출에 든든한 방패막이를 자처했다.

정부 암행감찰반에 걸린 국세청 간부의 비리를 무마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행어 '대한민국에서 안되는 게 어디 있니'식이다. 검은 돈의 거래와 먹이사슬로 얽힌 사연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사실 '형님·아우'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끼리끼리 연고문화의 상징어(symbolic word)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두세 다리만 건너면 닿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좁은 세상이다.

여기에 같은 지역,같은 학교 출신으로 묶이면 처음 본 사이라도 금세 형님·아우의 끈끈한 관계가 된다.

하지만 최근에 벌어진 그 많은 '게이트'에 빠짐없이 등장한 것도 이 형님·아우다.

참여정부의 윤상림·김재록·김홍수 게이트 모두 지연(地緣)이나 학연(學緣)에 기댄 형님·아우가 고구마 줄기처럼 뒤엉켜 끼리끼리 잇속을 챙긴 부패의 결정판이다.

구린 구석이 많고,연줄이 통하는 우리 사회에서 정권 실세나 권력기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접근법 만큼 싸게 먹히고 많이 남는 장사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미줄 규제는 은밀한 뒷거래를 통해 권력과 이득을 손쉽게 맞바꿀 수 있는 토양이다.

근본적으로 정부가 행사하는 힘으로서의 규제는,대개 공익보다 한정된 소수의 이익에 좌우되는 경향을 보이면서 로비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

솔직히 형님·아우끼리 남다른 유대(紐帶)로 서로 밀고 당겨주는 일이야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걸 기대하고 모두들 연줄 만들기에 매달리는 걸 탓할 수만도 없는 세태다.

그러나 그것이 법과 원칙마저 무시하는 유착(癒着)과 결탁으로 변질돼 경쟁사회의 공정한 룰을 무력화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그건 반칙과 범죄에 다름아니다.

더군다나 형님·아우의 유착에 검은 돈까지 개입된 로비는 로비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로비란 태생적으로 음침한 뒷거래를 연상시키는 말이지만,로비는 될 수 있는 일이 정책에 반영되도록 합리적인 방법으로 설득하는 과정이다.

안되는 일을 되게 하느라 돈이 오간다면 그건 부패일 뿐이다.

돈과 연줄에 기댄 검은 로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