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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성공신화'를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고, 이와 비례해서 '실패에 대한 우려감'도 급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경제가 글로벌(Global)화 돼 있어 중국 진출을 멈출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론은 명확하다.

"가능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적, 사회적 특성을 파악해 성공의 확률을 높이고 실패의 확률을 줄이는 길밖에 없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런 결론에 서광(瑞光)을 비친 책자가 최근 발간돼 화제다.

황금분할이 펴낸 '이자성(李自成)'이다.

책을 세상에 내놓은 이는 고려대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한 때 행정자치부에 근무했던 양철민씨. 저자는 400년 전에 살았던 농민 봉기의 주역 이자성의 삶과 생각, 그리고 그의 사상과 경륜에서 중국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13억 중국 인구 가운데 70%는 농민이다.

중국 역사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수많은 농민 봉기다.

중국 농민들의 봉기는 단순한 불만 표출로 끝나지 않고 아예 왕조 자체를 교체한 경우가 많다.

진시황제의 진나라는 진승과 오광이 주도한 농민 봉기로 멸망했고 유방이 세운 한나라는 황건적의 반란, 원나라는 백련교도가 중심인 홍건적의 반란으로 무너졌다.

명나라는 1644년 농민 봉기를 이끌던 이자성이 베이징을 점령한 뒤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나무에 목을 매 자살하며 종말을 맞았다.

이 책은 바로 명나라의 숨통을 끊어 놓은 이자성의 일대기를 파란만장하게 다뤘다.

저자는 책을 통해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중국에서 기업경영활동이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를 토대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설명한다.

1606년 섬서성 가난한 집안 아들로 태어난 이자성은 21세 때 역졸로 근무하다 조정에서 경비 절감을 이유로 역참을 정비하는 바람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한다.

빚에 쪼들려 결국 목에 칼을 채우는 죄인 신세가 된 이자성은 가난의 비참함을 절실히 느끼고 25살에 농민 봉기에 참여한 뒤 30대 중반에 하남에서 대규모의 농민군을 끌어 모으며 서안을 점령한다.

급기야 1643년에는 100만이 넘는 농민군으로 세를 불리고 결국 3월 중순 베이징을 점령한다.

저자는 지금도 중국인들에게 신화적인 존재로 통하는 농민군 지도자 이자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군더더기 없는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책의 끝장을 넘기고 나면 모택동이 공산혁명을 이끌 때 이자성의 일대기를 가장 많이 참고했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경제 발전에 전념하면서도 농민들의 생활상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중국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는데 좋은 지침서가 된다.

(02) 2268-6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