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永龍 < 전남대 교수·경제학 >

지난 8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북한에 차관 형식으로 제공하던 쌀을 무상으로 전환하고,향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으로 중단한 쌀과 비료 지원이 재개될 전망이다.

북한의 연간 식량 소요량은 550만~650만t 정도인데 풍년일 때의 자체 생산량은 450만t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매년 국제사회로부터 100만~200만t의 식량 지원을 받지 않으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1950년대 북한은 남한보다 더 잘 살았으며,60년대 중반만 해도 남북한 경제는 엇비슷했다. 그런 남북한 경제가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벌어졌다. 남한은 자본주의의 길을 걸었고,북한은 사회주의의 길을 갔으며 지금도 이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체제라는 사실은 이미 논리적으로 증명됐고,동유럽과 구(舊)소련의 몰락이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그런데도 북한이 현 체제를 고수하며 권력 유지를 위해 주민들의 밥을 굶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가 책임을 느껴야 할 이유는 없다. 한 번 핵실험에 최소 3억달러의 돈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되는데,이 돈으로 북한 주민들이 100일 동안 먹을 수 있는 쌀을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핵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가난이 핵개발을 불러왔다는 주장은 궤변일 뿐이다.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경제가 살아날 수 없는 이유는,사유재산권이 없으므로 시장이 돌아가지 않으며 시장 정보가 없으므로 자원 배분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유인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북한의 권력층이라고 해서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으나,체제 유지를 위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집권층의 체제 유지 틈바구니에 끼여 학대받는 주민들이다. 이들을 아사(餓死)로부터 구하기 위해서는 인도적 차원의 대북(對北) 지원이 필요하며,그런 지원을 반대할 명분은 별로 없다. 그러나 살펴봐야 할 점은 인도적 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지고 있는 대북 지원이 과연 인도적인가 하는 점이다.

인도적 차원의 쌀과 비료 지원이 단기적으로 기근(饑饉)에 허덕이는 일부 북한 주민들을 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도 지원 물자가 주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그렇지만,여러 가지 보도나 탈북자들의 증언을 보면 잘 전달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대북 지원이 폭정을 일삼는 북한 정권을 연장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삶이 개선될 수 있는 여지를 봉쇄한다는 것이다. 인도적 차원의 지원이 의도하지 않은 비인도적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사유재산권을 허용하는 자본주의로 체제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 한,금강산 관광을 아무리 활성화하고 개성공단 같은 것을 몇 개 더 만든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경제 사정과 주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이런 프로그램 역시 폭정을 연장시킴으로써 오랜 세월 동안 북한 주민들을 괴롭힐 뿐이다. 미국이 북한의 체제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폭정의 종식이 북한 회생의 지름길이라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삶을 진정으로 도와주는 길은 우리가 주요 각국과 함께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따뜻한 가슴'에 더해 '뜨거운 머리'에서 나오는 인도적 지원이 비인도적 결과를 낳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냉정하게 새겨봐야 한다. 인도적 지원이 의도하는 바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의도하지 않은 나쁜 결과가 대부분이라면 그것은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는 말은 대북 지원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더구나 '인도적'이라는 말로 포장된 대북 지원이 사실은 현 집권층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이는 남북한 주민 모두에 대한 범죄 행위다.

/한국하이에크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