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위해 회식차 중국집에 갔다. 마음대로 먹으라던 상사가 먼저 "난 짬뽕" 한다. 다들 눈치껏 자장면이나 짬뽕을 시키는데 누군가 "잡탕밥" 하고 외친다. 옆에서 "그냥 같은 걸로 하지" 권하는데도 "아무거나 먹으라면서요" 하며 잡탕밥을 고집한다. "조직의 쓴맛을 덜 봤군"이란 농담이 나온다.

우스갯소리지만 비슷한 식의 자기 주장이 회의석상에서 계속되면 '눈치없는 X' 내지 '조직의 걸림돌'로 낙인찍힐지 모른다. 대부분은 그렇게 되기 전에 알아서 자장면을 시킨다. 그러다 보면 1인자가 "짬뽕" 하는 순간 "짬뽕으로 통일하지"가 이어지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음으로써 주문은 끝난다.

대다수가 이처럼 힘(또는 영향력) 있는 사람을 좇아 움직이는 것을 '밴드왜건 효과'라고 한다. 밴드왜건은 서커스 행렬 맨 앞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악대차(樂隊車). 생각이 달라도 소수에 속해 따돌림당할까봐 숨죽이는 건 '침묵의 나선 이론'으로 풀이된다. 메뉴 통일이 특별한 현상이 아닌 어느 조직에서나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얘기다.

합의 중시 풍토는 '애벌린 패러독스'로도 설명된다. 다들 속으론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분위기상 혹은 "나만 참으면"이란 생각에 '노(No)'라고 못해 잘못된 결정에 이른다는 것이다. 때문에 '결속력이 높고 팀워크가 좋을수록 집단사고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LG경제연구원)

조직 속에서 제 주장을 어느 정도 펼 것인가는 실로 어려운 문제다. 많은 조직이 다양한 의견 개진 및 개성을 존중한다는 한편으로 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까닭이다. "똑똑하지만" "일은 잘하지만"이라는 평가 뒤엔 으레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조직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붙는다.

석궁사건 판결 담당판사가 개인글을 통해 "원고의 입시문제 오류지적 행위가…정당한 행위라는 것은…인정하는 바입니다. 다만…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스스로를 범죄 혐의자로 만들어버린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썼다. 조직가치란 과연 무엇인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