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永洙 < 고려대 교수·헌법학 >

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의 대(對)국민담화 이후 개헌 논란은 일파만파 커져가고 있다. 그동안 개헌을 둘러싼 학계의 논의가 적지 않았으며,여야 정치권에서도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문제가 정치권 전체를 뒤흔드는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견해 대립이 있기 때문이다.

개헌의 시기에 관한 논란은 세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첫째, 올해 개헌을 해야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최대한 일치시킬 수 있다는 점과 관련해 과연 양 선거를 한꺼번에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찬반이 엇갈린다. 노 대통령은 20년 만의 기회라면서 두 선거를 일치시켜 여소야대(與小野大)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만,두 선거를 일정 간격으로 실시함으로써 중간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통제를 위해 더 중요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둘째, 지금 개헌하지 않으면 대통령의 무책임성이나 임기말 레임덕 등의 문제는 차기 대통령의 임기 말에도 재연(再燃)될 우려가 크므로 지금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개헌을 시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차기 정부에서는 현정부와 다른 기초 위에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지지를 얻고 있는 상황이다.

셋째, 개헌의 추진과 관련해 정략적 의도가 숨어 있지 않은지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의 개헌 추진을 여권 지지율을 반등시키려는 시도 또는 여권의 대선전략에 대한 측면지원 등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러한 의구심에 기초한 것이며,노 대통령이 탈당(脫黨) 및 중립내각의 구성 등을 거론하는 것도 이를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미묘한 문제들에 대해서 분명한 정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개헌 시기 문제가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리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도 개헌 자체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리지만 개헌을 계기로 대선(大選) 구도에 새로운 변수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또한 개헌안 국회통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한나라당이 (우세한 정당지지도를 대선까지 유지하기 위해서) 당론으로 개헌에 대한 논의 자체를 봉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개헌에 대한 정치권의 찬반은 개헌이 금년 12월의 대통령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판단과 결부돼 있는 것이다.

개헌에 대한 국민의 찬반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결정되고 있다. 개헌 자체에 대한 찬성은 높아도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해서는 반대가 오히려 더 높다는 것은 개헌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미묘한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마도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상황이었으면 결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국민들이 개헌을 찬성하게 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의 비난여론과 각종 선거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정책을 이끌겠다고 공언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스스로 반감시켰다. 4년 중임제(重任制) 하에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지금 개헌하지 않을 경우에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차기 대통령에게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문제 때문에 오히려 국민들이 개헌에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결과는 지켜보아야 한다. 국민들이 개헌을 원한다 하더라도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지 못하면 헌법개정안은 무산된다. 다만 그 경우에는 국민이 원하는 개헌을 무산시킨 책임을 한나라당이 떠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한나라당은 개헌문제에 함구(緘口)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언제가 개헌의 적기(適期)인지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국민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