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英煥 < 정보통신부 차관 vice@mic.go.kr >

주5일 근무제가 시작되고 여행과 레저,각종 문화 행사가 넘쳐나도 TV는 여전히 많은 사람의 여가를 붙잡는 막강한 위력을 과시한다.

한 레저업체가 20~30대 젊은이를 대상으로 '주말 모습'을 설문조사해 보니 "TV를 보거나 잠을 잔다"고 한 응답이 38%로 가장 많았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어쩌면 TV가 끝없는 '영상혁명'으로 사람의 눈길을 계속 유혹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선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면서 화질이 너무나 생생해졌다.

화면에 보이는 음식은 진짜보다 더 맛있어 보이고,정동진 푸른 바다와 일출은 실제 보는 것처럼 선명하다.

기능도 달라졌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골라 편리한 시간에 따로 보는 건 기본이고,인터넷 검색과 전화에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주문할 수도 있다.

이렇게 방송과 통신이 서로 녹아드는 융합현상에 따라 TV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TV는 옛날처럼 프로그램을 수신만 하는 '수상기'에 머물지 않고,정보와 통신을 매개(媒介)하는 '허브'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방송의 디지털화와 통신과 방송의 융합은 이미 세계적 추세다.

미래를 대비하려면 이 흐름을 잘 타야 한다.

과거 우리는 흑백TV를 컬러TV로 전환하려다 소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시행 시기를 늦춘 적이 있다.

그 결과 세계 TV시장 진출이 경쟁국보다 무려 10년 이상이나 늦어지게 됐다.

지난해 우리나라 디지털TV 수출이 세계 1위라는 소식에도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디지털TV 전환 일정이나 통신방송 융합서비스 도입이 외국에 비해 상당히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우리가 애써 이룩한 세계적 기술 경쟁력이 바짝 쫓아오는 경쟁국에 한순간에 뒤집히지 말란 법이 없다.

과거 컬러TV 전환이 늦어 겪었던 전철(前轍)을 다시 밟아서는 안 된다.

10년 뒤에도 TV가 계속 수출 효자산업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면,그리고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를 우리 미래의 먹거리 산업으로 키우려면 지금 단계에서 정책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TV를 '바보상자'가 아니라 '보물상자'로 만들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