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茂進 < 경남대 교수·정치학 >

요즘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회담 개최의 당위론에서부터 무용론까지 극과 극을 달린다. 논쟁을 좀더 국가적·민족적 차원의 긍정적 담론(談論)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의 시각 분석이 우선돼야 한다.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이 합의문은 6·15 공동선언을 통해 전 세계에 공표됐다. 김 위원장의 서울답방은 남북한만이 아닌 전 세계와의 약속인 셈이다. 그러나 6년 반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답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 이상 늦어진다면 남북정상간의 첫 약속이 빈껍데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과 적절한 시기'에 대해 나름대로 로드맵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2000년 8월 남측 언론사 대표단과의 면담에서 "적절한 시기에 답방하겠고… 김대중 대통령한테 빚을 져서 서울에 가야하고… 김용순 비서를 서울에 먼저 보내겠다"고 밝혔다. 9월 대남(對南) 특사로 서울에 온 김용순 비서는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에 앞서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먼저 서울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9월 말 제주도에서 개최된 제3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박재규 남측 수석대표가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 날짜를 정하고,그것이 어렵다면 금년 내라는 시한을 정하자"고 제의했으나 북측 전금진 단장은 "상임위원장께서는 서울 방문을 빨리 하고 싶어 하고,그래서 빨리 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2001년 5월 스웨덴 페르손 총리와 만난 김정일 위원장은 "답방문제는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결과를 지켜본 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9월 제5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김령성 북측 단장은 "6·15 공동선언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방문할 것이고… 답방시기는 김 위원장이 직접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5월 박근혜 의원의 방북시 김 위원장은 "적절한 시기에 답방할 의사가 있음"을 되풀이했다. 2005년 6월 대북특사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방북시에도 김 위원장은 "적절한 때가 되면 남한을 방문할 것"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언급과 북측 고위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답방약속은 유효하고,답방시기는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결정하고,결정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봐 가면서 하며,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먼저 서울을 방문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요약을 토대로 할 때 체제보존과 경제난 극복을 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책추진 로드맵의 추론이 가능하다. 1단계로 제1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경제난 극복의 기반을 마련하고,2단계로 북·미정상회담 등 북·미관계 개선을 통해 체제보장의 토대를 마련하며,3단계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남북관계발전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면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토대를 마련하는 등 일련의 '토대 마련 로드맵'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2001년 부시 대통령의 등장과 북·미관계의 악화로 김 위원장의 로드맵은 2단계의 입구에서 중단됐다. 물론 2단계의 중단에 대해 부시대통령의 등장과 미국의 대북강경책만을 그 원인으로 돌릴 순 없다. 남한이 노벨평화상에 너무 몰두한 점,북한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당연시한 점,미국이 고어의 대통령 당선을 낙관한 점 등 남북한과 미국 세 나라가 북·미관계 개선이라는 중요 사안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한번쯤 '서울답방과 적절한 시기'를 놓친 셈이다.

지난 6년 반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는 수많은 사건과 변화로 점철(點綴)돼 왔다. 사건과 변화의 중심에는 북핵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비록 추론이지만 북한의 로드맵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핵문제를 북·미간의 과제라고 보는 북한의 인식에 잘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북핵문제 해결의 입구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를 거론하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을 결여한다. 결국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북핵문제와 북·미관계 개선의 진전 속에서만 그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