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仲秀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

온 나라의 시선이 새 지도자를 뽑는 데 쏠리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 활동의 미래가 매우 불안해 보이고,정부정책뿐 아니라 사법부 권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미FTA 관련 대외비(對外秘) 협상전략자료가 유출돼 국가의 기강이 지리멸렬 상태이며,체결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관측마저도 들린다. 사회가 어디로 흘러가는지,급변하는 상황에 국민의 머리는 어지러울 뿐이다. 온갖 어수선한 정치·사회 환경에서도 1인당 국민소득이 올해 2만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소식이다. 원화가치의 급속한 절상에 힘입은 것이기에 향후에도 국민소득이 계속 증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 형국이지만 그래도 한가닥 빛이다. 정치·사회적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 없는 상황에서도 경제는 계속 성장해 우리는 결국 선진국이 될 것인가? 선진국의 토대를 다지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지도자의 역량이 국가운영에 미치는 정도로 가늠해 볼 수 있다. 물론 어느 경우에도 지도자가 중요하다는 점에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없겠지만 지도자의 영향이 선진국에 비해 후진국에서 더 크다는 점은 확실하다. 제도보다는 사람에 의해 운영되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 선진국은 국민 각자가 독립적으로 사고(思考)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며,법과 규칙이 준수되는 기강이 잡혀있는 나라다. 따라서 선진국이 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합리적 사고와 행동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법을 적절하게 정착시켜야 하는 것이며,이러한 제도개혁을 잘 이끌어나갈 지도자를 뽑는 것이다. 국민이 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직면한 딜레마는 국민을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개혁할 지도자를, 변해야 할 당사자인 국민의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 현실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지도자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크게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평준화정책이 도입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평준화세대가 중추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획일화를 지향하고 다양화가 용납되지 않는 교육풍토에 젖어든,즉 평준화가 대표적 이념이 돼버린 세대다. 최근 우리사회를 휩쓸고 있는 평등의 이념도 실은 이에 근거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찾기 힘든 "대∼한민국" "촛불시위"와 같은 군집(群集)행동도 이에 연유한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미국도 교육개혁을 통해 개인의 경쟁력을 더욱 키우겠다는데 우리는 아직도 평준화 틀 안에서 사회가 불평등하다고 불평하면서 본인 탓보다는 다른 계층을 힐난하느라 세월을 보내고 있다.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은 국가들이 빠졌던 덫에 우리 스스로를 빠뜨리고 있는 중이다.

후보자의 자질이 우수하더라도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이렇게 함정에 빠져 있는 군중심리에 편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마디로 평준화이념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경쟁과 합리성을 지향하는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 설령 선출되더라도 평준화 이념에 맞추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여건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이제까지의 이념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것이다. 제도를 개혁해 국민의 행동을 자유화시켜 개인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한·미FTA를 계기로 사회 각 부문에 경쟁을 보편화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소득 2만달러가 되었다는 것을 불씨로 삼고,한·미FTA를 높은 수준에서 체결해 우리 국민을 내부지향적 평준화의 멍에로부터 탈출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물론 자유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고 자유화 추진으로 특정계층이 상당한 부담을 질 것이다. 내부의 이니셔티브에 의하지 않고 외부의 충격에 의한 자유화는 특히 정치사회적 불안정 여건에서는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의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대안이 있을 수 없다. 죽어야 산다(死則生)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정부의 헌신적 노력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