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斗植 <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dskim@shinkim.com >

지난 10일 서울행정법원은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피난 온 이집트인의 난민신청을 받아들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이집트인은 원래 회교도였다가 기독교(콥트정교)로 개종(改宗)하자 '무슬림 형제단'에 납치돼 고문을 받는 등 박해를 당한 끝에 한국에 와 난민신청을 했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종교에 관한 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우 관대하다.

동네 한가운데 어디고 절과 성당,교회가 함께 서 있는 풍경은 이제 익숙하다.

우리로선 낯선 이슬람교도 그리 어색하지 않게 우리 사회에 터를 잡아가고 있다.

좁은 땅덩어리에 세계의 주요 종교가 이렇게 큰 마찰 없이 공존하는 나라도 많지 않다.

심지어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이 믿는 서로 다른 종교를 존중하여 불교식과 기독교식 의례를 번갈아 행하는 진풍경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죽은 자라도 산 자들의 다양한 신앙을 존중해야 하는 세상이다.

가히 한국인의 종교적 포용력 만큼은 바다처럼 넓다고 할 수 있다.

이집트도 종교의 나라다.

곳곳에 남아 있는 고대 유적에서는 지금도 살아 있는 듯한 고대 종교를 만날 수 있다.

이슬람교나 기독교 같은 현대 종교는 현재 이집트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다.

그 뿐인가.

카이로 시내에는 죽은 자들의 무덤이 가난한 산 자들의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고,신왕국 18왕조의 중심도시였던 남쪽의 룩소(테베) 교외에는 무덤의 부장품을 도굴해 생계를 꾸려가는 마을도 있다.

종교의 본질이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일진대,이집트는 그야말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종교적 사회다.

오히려 종교적 열정이 지나치다 보니 타종교에 대한 너그러움은 부족한가 보다.

7800만명 내외인 이집트 인구 중 회교도가 약 94%,기독교도(대부분 콥트교)가 약 6% 정도라고 한다.

회교가 국교인 만큼 기독교도들은 차별에 시달리며 사회의 하층민을 구성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할 자유는 있지만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할 자유는 없다.

기독교도인 부모를 두지 않는 한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곧 가문과 사회에서의 축출을 의미한다.

종교적 전통이 풍부한 이집트에서 이처럼 소수종교가 배척받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공기와 물이 생명을 지탱하는 요소이듯 신앙은 영적인 삶을 지탱하는 요소다.

자신이 원하는 신앙을 자유로이 가질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영적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누릴 수 있게 한다.

우리가 항상 불안한 정치, 끊임없이 분열과 대립을 거듭하는 사회에 부대끼면서 찢긴 마음의 상처를 추스를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종교적 신념을 통해 영혼을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맑은 공기를 공짜로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듯이 우리가 종교적 자유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