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을 짓기 위해 절차를 진행하다보면 법이 기업을 돕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못하게 하려고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하이닉스반도체가 환경관련 규제 등에 부닥쳐 경기도 이천 공장을 증설하지 못하게 된 것은 비단 수도권에서만 생기는 일이 아니다.

경남 고성에서 선박 외판 등 조선기자재 공장을 증설하려했던 하나이엔지 배종석 사장은 "겪어보지 않으면 제조업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며 공장 신·증설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산업기계류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기존 공장 옆에 10억원을 들여 라인을 늘릴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전재해영향성검토와 사전환경성검토,토지 용도 변경,건축 인허가,농지보전부담금,개발부담금 등 복잡한 절차도 절차지만 많은 비용 부담에 도대체 엄두가 안나더라고요.

그래서 인허가 절차에서 일부 혜택을 받기위해 신설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예정대로라면 새 공장은 3월께 준공된다. 하지만 이런저런 문제로 배 사장의 머리 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관에서는 건축허가를 내주면서 방음벽과 분진막을 설치하라는데,주민들은 3m 높이의 방음벽이 세워지면 그늘이 져 농작물이 자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반대가 심합니다.

공장 인근에 민가가 없어 이런 시설물이 필요없다는 것을 현장에 와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데….사소하다면 사소한 이런 문제들이 헤아릴 수 없이 발생합니다."

배 사장이 공장설립 과정에서 겪은 고통은 빙산의 일각이다. 복잡한 인허가 규제를 혼자 풀 방도가 없어 외부 컨설팅회사에 용역을 줘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산업단지나 농공단지가 아닌 관리지역(옛 준농림지)에 개별적으로 공장을 세울 때 적용되는 규제가 몇 개인지는 사실 우리도 잘 모릅니다.

중앙정부 법률에서 지자체로 위임된 인허가 의제처리 사항이 공장부지관련 18개,건축행위관련 15개,건축물 사용승인관련 12개 등 모두 45개 정도로 파악되지만 수시로 바뀔 뿐 아니라 지자체별로 적용 방식이 다르고 중앙정부에서 직접 규제하는 것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죠."(A창업컨설팅 관계자)

관리지역 내 1만㎡ 미만 공장 설립만해도 중앙정부는 2005년 이를 허용할 수 있도록 법 규정을 바꿨지만 지자체별로 이를 조례에 반영한 곳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수두룩하다.

이 관계자는 "창업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한다는 정부 발표와는 거꾸로 실제론 공장 세우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단언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별적으로 점찍은 농지 등에 공장을 세울 수 있겠느냐는 문의를 받아보면 대체로 80%는 검토 단계에서 이런저런 규제로 인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과거엔 이 비율이 50% 안팎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나마 검토단계에서 가능하다는 20% 중에서도 실제 절차를 진행하다보면 10∼20%는 공장을 짓기 어려운 것으로 판명된다"고 설명했다.

공장설립 절차 등을 대행해 주는 경남산업컨설팅 문해원 대표는 "기업들은 농지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계약금을 준 상태에서부터 공장 설립을 위한 인허가 절차를 밟기 시작하는데 나중에 허가가 안나는 바람에 계약금을 4차례나 떼인 사례도 봤다"고 소개했다.

'원스톱 서비스를 하겠다''규제를 획기적으로 철폐하겠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정부와 지자체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신설법인수가 2003년 1만2445개에서 2004년 1만1078개,2005년 9435개,2006년 8300개(추정치) 등으로 급감하는 것도 거미줄 같은 규제와 무관치 않다.

창업컨설팅업체인 인터비즈컨설팅 김오연 대표는 "이런저런 제약을 고려할 때 공장을 차리려면 전부 베트남이나 중국을 가죠.국내에서 누가 제조업하려고 합니까"라며 "창업컨설팅 업계도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고성(경남)=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