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첫 '담배소송'이 흡연자들의 완패로 끝났다.

흡연으로 인한 폐암 유발 관련성은 인정됐지만,소송을 냈던 외항선원 등과 같은 '특정한' 개인이 30년 이상의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렸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송을 냈던 폐암·후두암 환자들은 모두 9명.이들은 모두 20~30갑년씩 담배를 피워왔다.

갑년이란 흡연을 얼마나 했느냐를 말하는 단위.예컨대 하루 1갑씩 20년간 피웠거나 하루 반갑씩 40년을 피웠을 때에는 20갑년이 된다.

농부에서 어부,일반 회사원까지 직종이 다양했던 이들은 매일 소주 1~2병을 마시거나 결핵 등을 앓기도 했다.

이들로부터 공통적으로 흡연 때문에 암에 걸렸다는 증거를 찾기란 어려운 일.

법원은 "폐암은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며 "흡연 이외의 다른 원인에 의해서도 발병할 수 있고 비흡연자에게서도 발병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기오염,방사선 등 폐암이나 후두암을 유발할 외부적 요인들이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담배 제조상 결함 없다=폐암환자와 가족들은 KT&G가 유해성을 알면서도 담배를 팔아왔다고 주장했다.

담배연기에 니코틴과 타르 등 유해물질이 들어 있다는 것을 파악했고,니코틴이 중독성이 있음에도 판매촉진을 위해 담배회사가 니코틴 함유량을 조작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담배연기에 니코틴과 타르 등 유해성분이 포함됐다는 것만으로 담배가 안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담배의 니코틴은 술의 알코올이나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과 같이 기호품으로 작용하는 주된 성분이라는 것.

◆니코틴 의존은 심리적 현상=법원은 담배가 아편 등에 비해 신체적인 의존도가 낮다는 점을 주목했다.

흡연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일 뿐,니코틴에 중독성이 있어 반드시 흡연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폐암 환자들은 KT&G가 1990년 1월에 '흡연이 건강에 그렇게 유해한가'라는 책자를 내면서까지 판촉행위를 했고,'라이트' 등의 이름을 붙여 흡연량을 증가하게끔 했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재판부는 KT&G가 발간한 책은 "담배사업자들에게만 배포된 것"이라며 원고측 주장을 일축했다.

타르와 니코틴 함유량이 적은 담배에 '마일드''라이트' 등의 이름을 붙인 데 대해서도 "이로 인해 흡연자들의 흡연량이 증가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이로 인해 이 사건 흡연자들이 폐암이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고 못박았다.

◆유해성 경고 문구 적절=폐암환자들과 KT&G는 담뱃갑에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 문구가 적절했는가를 두고 치열하게 다퉜다. 전매제도로 담배사업을 정부가 해왔던 우리나라에 흡연의 유해성이 최초로 알려진 것은 1959년의 일. 한 가정대가 출판한 책자에 유해성 연구 결과에 대해 한두 줄의 소개가 실린 것이 전부일 정도였다. 1964년부터 언론을 통해 흡연과 폐암의 연관성이 보도되면서 결국 1976년 이후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에 따라 담배 포장지에 경고 문구가 실렸다. 법원은 "1976년 이후 흡연과 폐암 사이 관련성은 공지의 사실이 됐고 피고들이 유해성에 관한 경고문구를 표시했다"며 "외국 사례와 비교해 (경고가) 높은 편에 속해 표시상 결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동욱·김현예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