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 < 논설위원 >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과학 과목이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 실상을 살펴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전체의 60%를 넘는 이른바 문과 학생들은 1학년 때 '공통과학'을 배우는 게 고작이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을 한 과목에 모두 담고 있으니 그 내용과 수준이 어떨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지 않다.

이과 학생들의 경우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다. 기초중의 기초과목으로 꼽히는 화학을 선택하는 학생조차 전체의 20%에도 못미치고 있는 실정인데 어떻게 과학 관련 심화과목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과학과목에 주어진 교육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 아니라 교육 과정 또한 극히 부실하다는 얘기다.

과학교육의 부실화가 몰고온 부작용이 어느 정도로 심각(深刻)한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이공계 대학 진학생 가운데 과학 선택자가 전체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이로 인해 물리를 모르는 학생이 공대로,화학과 생물을 배우지 않은 학생이 생명공학 분야로 진학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의 과학 실력이 형편없다는 얘기는 이미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실제로 대학신입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수학문제로 학력을 평가한 결과 오답률이 50%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는가 하면,공대 1학년 수업시간에 교수가 적분기호를 그렸더니 "그게 뭐냐"는 질문까지 나왔다고 한다. 정말 어처구니없다.

이처럼 과학교육이 위기에 몰리게 된 것은 교육 당국이 7차 교육과정에 따라 학생들에게 과학과목에 대한 선택권을 줬기 때문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선택은 창의성과 다양성을 길러주는 민주적인 제도이다. 하지만 대학입학이 지상 과제인 우리 현실에서 학생들이 점수따기 쉬운 과목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그런 점에서 새해 들어 정부가 과학과목을 필수로 변경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교육과정 개정 방안을 발표하고 나선 것은 주목할만 하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습부담이 늘어난다"며 반발하는가 하면,일반사회 음악 미술 체육 과목 등의 수업시간을 늘리려는 교수와 교사들의 로비경쟁이 벌어지는 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교과과정 개편을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공부할 과목이 너무 많다는 학생들의 불만 제기 역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종전의 교육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특히 과학교육 강화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도 국가과제로 내걸고 이를 실현하는 데 온힘을 쏟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우리도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현행 교과과정의 문제점을 시급히 개선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뿐만 아니라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과학교육의 큰 틀과 방향을 제대로 잡아나가야 할 것이다.

초·중·고교의 과학교육 기반이 완전히 무너져 버릴 위기에 처했다며 과학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교육과정을 시급히 개편해달라는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할 때다.

kimks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