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수장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직은 강신호 현 회장이 3연임하는 것으로 사실상 결론이 났다.

전경련은 2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회장단 회의를 갖고 다음달 임기가 만료되는 강 회장의 후임자 선출 문제를 논의한 결과 강 회장을 재추대키로 뜻을 모았다.

강 회장은 '가정문제' 등을 들어 고사했으나 예전 관례대로 '삼고초려' 끝에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할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강 회장이 고령(만 80세)과 상대적으로 약한 기업(동아제약) 사세, 최근 불거진 아들 강문석 수석무역 대표와의 경영권 분쟁 등 여러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만장일치'로 회장에 재추대된 것은 대안이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회사경영에만 전념하겠다"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비자금 조성 등으로 기소상태인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국민의 정부 당시 '빅딜' 과정에서 전경련이 한 역할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갖고 아예 발길을 끊은 구본무 LG그룹 회장, 연배가 중시되는 재계에서 단체장을 맡기에는 너무 젊은 최태원(46세) SK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회장은 모두가 전경련 회장이 될 수 없는 결정적 사유를 갖고 있다.

그동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등이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막상 본인들은 극구 부인했고 이 같은 기류는 이날 회장단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요 그룹 총수들이 전경련 회장직을 마다하는 이유는 올해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선의 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을 수 없고 때로는 재계를 대표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전경련 회장직을 맡을 경우 자칫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해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된 한 총수는 장인 등 가족까지 나서 극력 만류하는 통에 완전히 뜻을 접었다는 후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경련 회장단 가운데 최고령이며 사업상으로나 인품으로나 두루 원만한 강 회장의 연임 방안이 자연스럽게 부각됐고 재계에서는 '이심전심'으로 이에 관한 합의가 형성돼 갔다.

이런 상황은 올해들어 강 회장이 동아제약 경영권을 두고 아들인 강문석 수석무역 대표와 분쟁을 빚으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동안 역할이 주어질 경우 한번도 '노(NO)'라고 말한 적이 없다"면서 회장직 연임의지를 은연중 드러냈던 강 회장도 결국 회장단 회의에서는 가정문제를 간접적으로 거론하면서 차기 회장직을 고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는 강 회장의 본심이라기보다는 '사양의 예'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강 회장은 이미 2005년에도 회장에 재추대된 뒤 고사하다 회장단의 '삼고초려' 끝에 이를 수락한 바 있다.

조건호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강 회장에게 전경련 회장직을 다시 맡아줄 것을 재차 간곡히 요청할 것"이라면서 "다음주쯤 강 회장이 결심을 발표할 것이며 강 회장이 수락한다면 더이상의 논의는 필요없다"고 밝혔다.

강 회장이 가족문제 등으로 '상처'를 받은만큼 2005년과는 상황이 다르며 이번에는 회장직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는 않지만 현재로서는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

강 회장이 끝내 거부할 경우에는 전경련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강 회장 외에 후보가 전혀 거론되지 않는 상황에서 다음달 9일 총회 때까지 20여일의 짧은 기간에 새 회장을 물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 회장이 차기 회장직을 수락한다고 해도 '가족 문제' 등을 둘러싼 시비가 일 가능성이 없지 않고 좀더 젊고 사세가 큰 그룹 총수가 전경련을 이끌어야 한다는 여론은 여전할 전망이다.

따라서 재계에서는 강 회장이 대선 때까지 '한시적으로만' 전경련 회장직을 수행하고 이후 새정권의 출범과 함께 새 재계 수장을 뽑는 절충안이 유력하게 부각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