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예약 판매는 1994년 8월 전국 평균 기온이 섭씨 26.8도로 1973년 기상청 발표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게 시발점이 됐다.

당시만 해도 여름 더위는 8월을 끝으로 수그러들곤 했는데 초가을까지 '푹푹 찌는' 날씨가 이어지자 유난히 '더위에 약한' 소비자들이 에어컨 판매 매장을 찾아와 '선금을 줄 테니 신제품이 나오면 바로 설치해 달라'고 요구한 것.

이 때부터 시작된 에어컨 예약 판매는 소비자는 물론 제조업체들에도 많은 이득을 안겨주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윤인덕 LG전자 한국마케팅 차장은 "에어컨은 여름에만 판매하는 계절 가전으로 취급받은 터라 어떤 달은 주문이 몰리고,어떤 달은 파리 날리는 식의 비효율성이 있었다"며 "하지만 예약 판매가 이뤄지면서 수요 예측이 가능해 지고 덕분에 생산 효율성도 점차 회복됐다"고 설명했다.

하이마트 등 유통업체들도 에어컨 설치 시점을 분산할 수 있어 예약 판매를 적극 장려했다.

손민욱 하이마트 홍보팀 대리는 "2인1조로 작업을 해도 하루에 10개 설치하기 힘들다"며 "성수기에 설치가 몰리면 아무래도 소비자 불만 사례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예약 판매가 이를 막아주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 겨울,또 다른 '예약 구매의 경제학'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예약 구매는 1월까지만 해도 바닥을 기고 있었다.

오래된 소비 침체 탓이었다.

그러다 2월 말쯤 미국 NASA로부터 '올해 100년 만의 더위가 찾아온다'는 예보가 날아들었다.

이 때부터 주문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2005년 한 해 동안의 에어컨 매출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예약 판매가 엄청난 '입소문 효과'를 갖고 있었던 것.

제조업체들이 예약 판매 기간을 신제품의 '테스트 마켓(test market)'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덕분에 여름 성수기와 달리 예약 판매 때는 벽걸이 에어컨,700만 화소 디지털카메라 등 30만원을 호가하는 사은품이 줄줄이 공짜로 제공되곤 한다.

이제 에어컨 예약 구매는 단순히 남들보다 먼저 구매한다는 것을 넘어 남들보다 싸게 산다는 의미가 된 셈이다.

실제 지난해 하이마트에서 팔린 LG전자의 15평 투인원(two-in-one) LPC153WR를 예로 들면,1월 예약 판매 기간 중에 구입한 경우 38만원짜리 벽걸이 에어컨을 공짜로 얻을 수 있었으나 여름 성수기 때 구입한 경우는 가격은 그대로고 사은품도 일절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에어컨을 예약 판매 때 사는 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백색 에어컨이나 업소용,혹은 10평형 이하 소용량 에어컨을 원하는 고객은 여름 성수기 직전인 6월을 노려볼 만하다.

예약 구매 때는 전체 판매량의 90%가 프리미엄급 신제품일 정도로 물량 구색이 적은 데 비해 6월쯤 되면 제조사와 유통업체들이 '실속파'를 겨냥,일반 모델보다 15∼30%가량 저렴한 기획 상품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손민욱 대리는 "불필요한 성능을 빼고 외관 재질도 좀 싼 것으로 한 제품들이 6월부터 속속 등장한다"며 "수량이 한정돼 있는 만큼 7월이면 품절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