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키워지는 것"이라고 도발적인 선언을 했던 보부아르는 1949년에 쓴 '제2의 성(性)'에서 여성들의 완전한 사회적·경제적 평등을 예견했다. 책은 불티나게 팔려나갔으나,남성위주의 사회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희망사항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여성은 사회의 중심계층으로 우뚝 올라섰다. 보부아르가 외쳤던 '여성해방'은 이제 낡은 구호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해지고 있는 현상들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성 정치지도자들이 각광을 받는가 하면,경제계와 법조계 역시 여성파워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의 총학생회장을 여성들이 휩쓸고,성적도 남성보다 월등하다.

이러한 슈퍼파워 여성은 요즘 '알파걸(α-girl)'로 불린다.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인 댄 킨들러가 자신의 능력으로 남성을 추월한 13~17세의 엘리트 여학생을 '알파걸'이라 명명한데서 비롯됐는데,책 이름도 아예 알파걸로 붙였다. 리더십이나 운동,학업 등 모든 분야에서 남성을 능가한다 해서 그리스 알파벳 첫 글자인 'α'를 따온 것이다. 여성들의 부상은 비단 선진국만이 아니고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여성들이 사회의 주류를 형성해 가자 출산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 '남아 선호'대신'여아 선호'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며칠전 국정홍보처가 발표한 '한국인의 의식·가치관'조사를 보면,출산을 가장 많이 하는 30대에서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를 의탁하고 후대를 잇는다는 관념이 희박해지는 것도 한 요인일 게다.

과거 가족계획 표어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며 딸의 가치를 애써 강조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들 낳으면 위로 받는'세상이 돼 가고 있다. 아직 여성들 머리위엔 보이지 않는 차별의 '유리천장'이 드리워져 있긴 하지만,우리네 딸들이 사회와 가정의 진정한 기둥으로 성장할 날은 그리 머지않아 보인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