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와인 전문 만화 '신의 물방울' 9권이 출판됐을 무렵,마니아들 사이에서 '메종 루 뒤몽-뫼르소 2003'이란 프랑스 부르고뉴산(産) 화이트 와인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와인의 생산자로 등장한 인물이 아시아인,그것도 한국인 아내와 일본인 남편이었던 것."일본인 양조가 나카타 고지씨(35·왼쪽)가 한국인 부인 박재화씨(40·오른쪽)와 함께 만든 와인입니다.

부르고뉴에 오래 거주하면서 와인 만드는 법을 배우고 연구하며,충분히 준비해서 2000년부터 네고시앙(주류 도매상)으로서 생산을 시작한 와인이죠."(신의 물방울 중에서)

아시아人 와인 네고시앙 박재화 · 나카타 고지 夫婦
와인에 관한 한 완고하기로 이름난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아시아인이 어떻게 정착할 수 있었을까.

30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부르고뉴 와인 시음회 참석차 한국을 찾은 박씨 부부를 29일 만나 궁금증을 풀었다.

1996년 봄까지만 해도 박씨는 부산의 한 대학에서 국사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해 여름에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막내여서 큰 부담은 없었지만 시간 강사 월급만으론 어머니를 위해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담당 교수와 상의 끝에 미술품 복원 전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렇게 해서 28세의 나이에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선 어학이 급했기 때문에 프랑스어 초급반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어요.

와인을 공부하러 왔다고 하더군요."

나카타씨는 대학 재학 시절 도쿄에서 소믈리에로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이미 와인에 관해선 전문가 수준이었다.

"하도 입이 마르게 와인에 대해 자랑하길래 그를 따라 부르고뉴 본 로마네 지방의 아루망 루소(Armand Rousseau)란 포도밭(도멩·domain)을 함께 방문해 와인을 마셨습니다.(정말 유명한 곳인 줄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때 느꼈죠.'와인에 도전해봐야겠다'고 말이죠."

1997년 여름에 귀국,와인 입문서를 구입해 용어부터 익히기 시작했다.

"입문서를 읽다보니까 '마주앙'의 제조자로 유명한 김준철씨 책이 좋더라고요.

무작정 찾아가 조언을 구했죠."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디종에 있는 부르고뉴 대학 및 부르고뉴 와인 무역의 중심지 본(Beaune) 마을에 위치한 소믈리에 전문 학교 CFPPA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

"나카타씨와는 1999년에 결혼했습니다.

곧바로 2000년에 뉘 생 조르주에 '루 뒤몽'이란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네고시앙으로서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기업이 투자 차원에서 보르도의 샤토(포도밭을 포함한 와인 제조시설,부르고뉴의 도멩과 같은 개념)를 사들이긴 했어도 아시아인이 직접 와인 제조 및 유통에 나서기는 처음이었다.

"한번 거래한 도멩과는 풍년이건 흉년이건 지속적으로 포도즙을 구매했습니다.

운이 좋았던지 'Le Guide Achette'같은 일본인이 많이 보는 프랑스 와인 잡지들이 우리가 선보인 와인에 좋은 평가를 주기 시작했어요." '크레망 드 부르고뉴(Cremant de Bourgogne)'란 스파클링 와인은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앙리 자이에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

덕분에 박씨 부부를 포함해 직원 네 명의 '루 뒤몽'은 연 매출 30억원대의 중견 회사로 성장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