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德培 <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지난해 말 한국은행의 지급준비율 인상 발표 이후 국내 은행들의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은행들이 지급준비율 인상으로 추가로 적립해야 될 자금을 주로 양도성예금증서(CD) 발행을 통해 조달하고 있어 각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CD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강화된 주택담보대출 규제에 대응해 각 은행들이 앞다퉈 우대금리 혜택을 폐지하고,가산(加算) 금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금리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지급준비율 인상을 통해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고 자금의 선순환 구조를 회복시키려던 통화당국의 당초 의도는 흐려진 반면 안타깝게도 은행의 대출금리 인상만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은행권에서 촉발된 금리인상 러시(rush)는 이제 보험권,사채시장 등 금융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앞으로도 금융긴축 기조(基調)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금리인상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금년 첫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콜금리를 동결했지만 통화당국은 부동산가격 안정 등을 위해 긴축에 대한 경계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금융 정책당국과 감독당국도 상황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한층 강화할 태세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고 가계 부채(負債)를 더 이상 늘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긴축금융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급격한 정책변화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먼저 대출금리 상승은 가계 이자부담 증가로 이어져 소비를 위축시킬 것이다. 벌써부터 단기간에 가파르게 오르는 금리를 감당하기 벅찬 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다 만일 부동산 가격이 본격 하락하게 될 경우 이들의 가계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금리압박 부담으로 한계상황에 몰리는 중소기업들이 더욱 증가할 것이다.

가뜩이나 중소기업들은 현재 환율 하락에 의한 수익성 악화,내수 부진(不振)에 의한 경기 침체,자금조달난 등으로 경영 환경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그리고 금리인상은 외국 단기자본의 국내 유입을 촉진시켜 환율을 더욱 낮출 수 있다. 원화 가치가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게 되면 가뜩이나 어려워지고 있는 수출이 직격탄을 맞게 돼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는 치명적이다.

따라서 금융 관련 당국은 자칫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다 신중히 정책을 펼쳐야 한다. 특히 올해는 연초부터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대선(大選)을 향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대선 정국에 진입하면서 갈등 요인이 한꺼번에 분출되고,레임덕 현상에 따른 리더십 부재(不在)로 경제 불안이 심화되면서 경제가 정치논리에 휘둘리기 쉽다. 수년간 과잉유동성을 방치하다가 갑자기 그 방향을 급선회할 경우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결국 금융 관련 당국의 몫이다.

한편 은행권에서도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현재 대출금리만큼 예금금리가 오르지 못해 예대(預貸) 마진폭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주택담보대출을 경쟁적으로 늘리면서 높은 수익을 실현한 은행들이 이번에는 정부의 긴축정책에 편승해 또 '제 이익 챙기기'에 바쁘다는 괜한 비난도 받고 있다. 이제 은행들은 가급적 금융소비자의 금리 부담을 줄이는 방향에서 필요 유동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신용등급시스템(CRS),개인신용평점시스템(CSS) 등 선진 금융시스템을 잘 활용해 대출 가산금리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의 금리인상 경쟁을 대표적 게임이론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적용할 수 있다. 비록 금리인상이 개별 금융회사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최선의 선택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결국 불합리한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 금리인상으로 가계와 중소기업의 부실이 심화될 경우 결국 모든 금융회사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기수익에 급급하기 보다는 경제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경영의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올해는 기대보다 위기관리가 더 중요한 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