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사는 중산층 시민들은 주말에 어디로 쇼핑을 가야할까.

누구나 상젤리제나 마레지구로 나가고 싶겠지만 그곳은 너무 복잡해 한가한 분위기를 즐길 수 없다.

쇼핑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파리사람들은 아이들과 함께 쇼핑과 외식을 겸할 수 있는 곳으로 '베루시 빌라쥬'를 꼽는다.


이 상가는 새로 건설된 지하철 14호선을 타면 시내에서 직통으로 20분 안에 도착한다. 베루시공원에 인접해 있는 이 상가는 예전에 있던 와인저장창고를 개조해 만든 곳으로 와인을 실어내던 철로가 거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아담한 돌길 옆으로 늘어선 점포들이 겉보기엔 작아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꽤 큰 규모다.

이곳에서 취급하는 상품들은 모두 웰빙상품들.쇼핑을 하다 지칠 땐 촛불을 켜둔 조그마한 레스토랑에 들러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면 주말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특히 이들 상가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록시탕이다.

이 점포는 식물성 비누 등 자연화장품만 만들어 판매한다.

이 회사는 이른바 웰빙상품인 '매스티지(masstige)' 제품으로 성공한 기업이다.

매스티지 상품이란 대중(mass)과 명품(prestige product)을 조합해 만든 말로 비교적 값이 싸면서도 감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고급품을 일컫는다.

흔히 '대중명품'이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2003년 경제잡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처음 소개된 것이지만 최근 들어 웰빙바람과 절약심리를 조화시킴으로서 확실한 소비성향으로 자리잡았다.

매스티지가 처음엔 화장품에서 출발했으나 지금은 의류 가방 여행상품 식품 스포츠용품 전자기기 휴대폰 등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가격을 비교하면서 명품을 구입할 수 있는 사이버쇼핑몰도 인기를 끌고 있다.

프랑스 화장품업체인 록시탕은 매스티지 성향에다 자연주의 친환경 등을 선호하는 경향 덕분에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알고 보면 록시탕은 그다지 오래된 기업이 아니다.

1976년에 설립됐으니 서른 살을 갓 넘겼다.

이 회사 창업자인 올리비에 보송은 어릴 때 고향에서 만들던 로즈마리 오일을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낡은 증류기를 하나 구해 이것으로 손수 거둬들인 야생 로즈마리로부터 순수 자연산 오일을 추출해냈다.

이를 장터에서 팔아 마을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하자 록시탕을 창업한 것이다.

록시탕은 그의 고향인 프랑스 남부지방인 옥시타니 지역을 뜻한다.

올리비에 보송은 로즈마리 오일로 성공을 거두자 이번에는 마르세이유에서 폐업한 비누공장을 사들여 전통적인 명품 비누를 만들었다.

비누 생산 중소기업 공장들이 줄줄이 폐업하고 있는데도 그는 식물성 비누를 개발해 세계적인 명품제조 기업으로 부상했다.

이어 그는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나는 시어나무 열매로 만든 시어버터를 만들어다.

이런 제품으로 현재 70개국에 700여개 점포를 차렸다.

실제 가장 전형적인 매스티지 전략으로 성공한 기업으로는 보디숍(Body Shop)을 꼽는다.

이 회사도 록시탕과 같은 해인 1976년 창립됐다.

영국 남부지방에서 출발한 이 회사는 웰빙 컨셉트에다 환경보호 동물보호 인권보호에 앞장서는 활동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60여개국에 2000여개 점포를 열었다.

이 밖에 핸드백 업체인 코치,회원할인점 코스트코 등도 매스티지 전략으로 이미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한국에서도 매스티지 바람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LG전자는 패션 명품 프라다와 제휴해 개발한 '프라다폰'(모델명 LG-KE850)을 2월 말부터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시장에서 판매한다.

프라다폰은 프라다 매장과 휴대폰 전문매장에서 판매된다.

홍콩 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시장에는 3월 말에 출시하고 한국 시장에도 3월 이후부터 내놓을 예정이다.

프라다폰은 숫자 및 메뉴 버튼을 모두 없애고 터치스크린 방식을 채택했다.

휴대폰과 파우치 액정보호필름 등 각종 액세서리에 프라다 로고를 새겨넣는다.

LG전자는 프라다폰을 내놓기 위해 제품 개발 단계부터 프라다와 협력했으며 마케팅 활동도 함께 펼치기로 했다.

이 회사는 프라다폰을 세계적인 매스티지 제품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구업체인 보루네오가구도 매스티지 제품을 내놨다.

이 제품의 이름은 '지·갈리'(g·galli)다.

지·갈리는 원래 이탈리아 원목가구 브랜드.보루네오가 지·갈리와 계약을 맺고 두 회사가 함께 디자인해 한국시장에 들여왔다.

생산은 이탈리아 현지에서 한다.

보루네오는 이 브랜드를 매스티지 브랜드로 성장시키기로 했다.

이처럼 국내에선 대기업들이 매스티지 상품을 내놓기에 바쁘지만 중소기업이 개발하기에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는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각자 전문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어 지금까지 축적해온 전문기술을 바탕으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부가해 명품을 개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명품을 처음부터 대중화시킬 필요는 없다.

록시탕처럼 매스티지 전략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회사들은 한결같이 중소기업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이제 한국의 중소기업들도 명품개발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왔다.

또한 중소기업들은 극소수 소비자를 대상으로 맞춤형 명품을 겨냥하는 이른바 '매스클루시버티(massclusiverty)' 시장도 노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치구 한국경제 중소기업연구소장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