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말레이시아인 탄진키앗(35).지난 23일 쿠알라룸푸르 중심가인 부킷빙탄의 '뱅크이슬람' 지점에서 만난 탄은 "무라바하(Murabahah,무이자 금융기법의 하나) 방식으로 주택대출 계약을 맺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불교 신자라고 밝힌 그에게 굳이 이슬람식 주택대출 상품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탄은 "일반은행을 포함해 여러곳의 조건을 따져 상품을 골랐다"면서 "연체료를 물리지 않는 점도 맘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슬람식 주택대출은 고객이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택을 구입한 뒤 원금과 이자를 갚는 일반 대출과는 구조가 다르다.

이자를 금지하는 대신 실물자산이 수반된 거래에선 이윤을 허용하는 샤리아(이슬람율법)에 부합하도록 설계되기 때문이다.

우선 은행은 (주택)수요자와 계약을 맺고 주택을 매입한다.

수요자는 주택 매입가격,은행의 각종 비용 및 적정 이윤 등을 약정기간에 상환하면 소유권을 넘겨 받을수 있다.

1963년 이집트의 미트 감 은행에서 시작된 이슬람소매금융이 덩치를 불리며 40여년 만에 세계 금융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비(非)이슬람교도로 수요가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해 바레인에서 열린 이슬람금융회의에선 최근 3년간 세계 이슬람 소매금융시장이 연평균 20%씩 커졌고 이런 성장세는 향후 5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맥킨지컨설팅도 최근 리포트에서 "이슬람 은행들은 전 영역에서 기존 은행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이슬람금융을 도입한 나라는 75개국.이 가운데 아랍계 금융기관만 영업할수 있는 이란 수단 파키스탄 등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글로벌 은행들은 샤리아에 부합하는 상품을 선보이며 토착 이슬람 금융 회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의 경영학석사(MBA) 프로그램 담당자인 총벵순 교수는 "비이슬람교도에게도 이슬람금융 상품이 더 이상 종교적인 문제가 아닌 경제 논리에 기반한 선택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슬람 국가들의 토착 은행은 물론 씨티,HSBC,스탠다드차타드,ABN암로 등 유수 은행들도 앞다퉈 소매금융시장에 뛰어 들어 정기저축,카드,주택대출,자동차할부금융 등 기존 은행이 제공하는 대부분의 상품을 '이슬람 버전'으로 내놓고 있다.

2004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이슬람저축상품 판매를 시작한 영국이슬람은행은 최근 주택담보대출로 영업을 확대하며 프랑크푸르트와 파리 등에 지점을 추가로 열기로 했다.

자히다 만주 지점 총괄 매니저는 "5000만파운드(약 1000억원)의 저축예금 자산을 런던금속거래소(LME)의 구리나 알루미늄과 같은 실물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고 이를 이자 대신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영국 로이즈TSB도 작년 7월부터 대형 시중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2000여개의 영국 내 전 지점에서 이슬람 금융상품 판매에 돌입했다.

금융부문에서 이슬람금융시장만을 예외적으로 개방한 말레이시아에서는 쿠웨이트파이낸스하우스,알 라지(두바이)에 이어 카타르이슬람은행도 조만간 지사를 설립키로 해 뱅크이슬람,홍룡은행 등 7개 토착 은행과 경쟁하고 있다.

홍룡은행의 이슬람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의 70%가 비이슬람교도다.

타카풀(Takaful)로 불리는 이슬람식 보험은 성장성 측면에서 특별히 주목받으며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G를 비롯 알리안츠 HSBC 등을 중동지역 시장으로 끌어 들이고 있다.

타카풀은 보험료로 받은 돈을 샤리아에 따라 윤리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 보험과 다르다.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가입자들이 급증하면서 그 시장 규모는 지난해 20억달러에서 2015년엔 70억달러로 세 배 이상 커질 것으로 무디스는 전망했다.

윤리적인 투자에 관심을 갖는 비무슬림들의 가입이 늘고 있는 데다 (타카풀 자금의) 투자를 기다리는 중동의 개발 프로젝트도 무궁무진하다는 게 그 이유다.

이슬람 소매금융 시장 급성장의 중심엔 여전히 종교적인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수익을 얻으려는 무슬림들과 금융회사들이 자리하고 있다.

후세인 알켐지 두바이국제금융거래소 이사회 부의장은 "아직도 전 세계 무슬림 15억6000만명 가운데 25% 정도만 이슬람 소매금융을 이용하고 있다"면서 "어떤 측면에서는 수쿠크(이슬람채권) 시장보다도 더 성장 전망이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김수언(두바이).주용석(런던).류시훈(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 기자 indep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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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Tip

◎무라바하(Murabahah)=금융회사가 고객 대신 주택 자동차 기계 등 실물자산을 구입한 뒤 원가에 약정 이윤을 덧붙인 가격으로 고객에게 다시 매각하는 기법.금융회사는 고객과 사전에 구입 및 판매가격은 물론 각종 비용과 적정 이윤을 협의해 확정한다.

샤리아에 금지한 이자를 안 물리지만 실질적으론 이자에 해당하는 이윤을 받아 일반 금융 기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