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외고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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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지역 중학교를 지나가다 보면 정문 위에 걸려 있는 색다른 현수막을 마주치게 된다.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외국어고와 과학고,예술고,민사고 등에 합격한 학생들의 이름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좁은 관문을 뚫고 목표를 달성한 학생들을 격려하면서 후배들의 귀감으로 삼겠다는 학교의 뜻이 담겨있음은 물론이다.
특목고 중에서도 현재 서울지역 상위권 외고는 고교평준화 이전 시절의 이른바 명문고들을 떠오르게 한다. 중3생에게는 외고 입학이야말로 명문대 진학의 지름길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사법시험 합격자들의 출신고교를 따져보더라도 최상위에는 항상 외고가 차지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우수한 학생들이 앞다퉈 외고를 찾고,신흥 명문고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오죽했으면 한국은 '외고공화국'이란 신조어까지 생겼을까 싶다.
내신성적 상위 10% 이내의 학생들이 몰리는 탓에 외고는 학습분위기도 좋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기를 쓰고 자녀를 보내려 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 비중이 중요해지면서 수능시험 등급제 전환에도 불구,입시 경쟁률은 갈수록 치솟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외고광풍(狂風)이라는 말도 나왔다. 여기에는 외고측이 너무 어려운 문제를 출제해 사교육을 조장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나름대로 학생지도에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또 그간 올린 대학 진학 실적 때문에 더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하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학교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최근 외고별로 실시했던 입시설명회를 교육청이 직접 주관해 합동으로 실시토록 하는 등 외고 입시제도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사교육 열풍을 진정시키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교육의 정상화보다는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입시부터 영어듣기 시험을 중학교 수준에서 내도록 하고 내신성적 반영 비중도 대폭 높이는 바람에 영어 실력만 우수해서는 합격이 더욱 어렵게 됐다. 외국어 능통자를 기른다는 외국어고의 인가 목적과도 어긋난다.
정부는 외고 졸업자들이 대학에서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 등을 전공하는 것을 희망하지만 이제 외국어는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만약 우리나라 의사들이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면 의료기술과 가격경쟁력을 감안할 때 일본이나 중국,미국에서도 환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흐름을 외면한 채 일부 시민단체는 당장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추첨으로 외고 합격자를 선발할 것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설사 대학까지 평준화하더라도 희소자원을 확보하려는 경쟁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대학졸업 후 제비뽑기로 직장을 선택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현 시점에서 외고 등 특목고가 수월성을 추구하는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하향평준화의 약점을 보완하는 길이다. 능력과 노력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어떤 형태의 차별은 거부한다는 평등지상주의 논리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 공교육 발전은 요원할 뿐이다.
최승욱 논설위원 swchoi@hankyung.com
특목고 중에서도 현재 서울지역 상위권 외고는 고교평준화 이전 시절의 이른바 명문고들을 떠오르게 한다. 중3생에게는 외고 입학이야말로 명문대 진학의 지름길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사법시험 합격자들의 출신고교를 따져보더라도 최상위에는 항상 외고가 차지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우수한 학생들이 앞다퉈 외고를 찾고,신흥 명문고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오죽했으면 한국은 '외고공화국'이란 신조어까지 생겼을까 싶다.
내신성적 상위 10% 이내의 학생들이 몰리는 탓에 외고는 학습분위기도 좋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기를 쓰고 자녀를 보내려 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 비중이 중요해지면서 수능시험 등급제 전환에도 불구,입시 경쟁률은 갈수록 치솟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외고광풍(狂風)이라는 말도 나왔다. 여기에는 외고측이 너무 어려운 문제를 출제해 사교육을 조장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나름대로 학생지도에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또 그간 올린 대학 진학 실적 때문에 더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하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학교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최근 외고별로 실시했던 입시설명회를 교육청이 직접 주관해 합동으로 실시토록 하는 등 외고 입시제도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사교육 열풍을 진정시키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교육의 정상화보다는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입시부터 영어듣기 시험을 중학교 수준에서 내도록 하고 내신성적 반영 비중도 대폭 높이는 바람에 영어 실력만 우수해서는 합격이 더욱 어렵게 됐다. 외국어 능통자를 기른다는 외국어고의 인가 목적과도 어긋난다.
정부는 외고 졸업자들이 대학에서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 등을 전공하는 것을 희망하지만 이제 외국어는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만약 우리나라 의사들이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면 의료기술과 가격경쟁력을 감안할 때 일본이나 중국,미국에서도 환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흐름을 외면한 채 일부 시민단체는 당장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추첨으로 외고 합격자를 선발할 것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설사 대학까지 평준화하더라도 희소자원을 확보하려는 경쟁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대학졸업 후 제비뽑기로 직장을 선택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현 시점에서 외고 등 특목고가 수월성을 추구하는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하향평준화의 약점을 보완하는 길이다. 능력과 노력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어떤 형태의 차별은 거부한다는 평등지상주의 논리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 공교육 발전은 요원할 뿐이다.
최승욱 논설위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