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다국적 제약사들의 생산기지에서 판매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다국적 제약사들이 고임금과 노사 갈등 등을 이유로 국내에 있던 생산공장을 속속 철수하거나 축소한 여파로 완제의약품 수입이 큰 폭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제의약품 수입 43%나 늘어나

1일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총 의약품 수입액은 44억4541만7000달러로 2005년 대비 약 28% 증가했다.

특히 완제의약품 수입액은 17억4077만9000달러로 무려 43% 증가했다.

완제의약품 수입액은 2003년에만 해도 6억8772만달러에 그쳤으나 매년 30∼40%대의 높은 증가세를 기록,불과 3년 만에 약 3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반면 총 의약품 수출액은 12억9866만6000달러로 전년 대비 13% 증가하는 데 그쳤고,완제의약품 수출액의 경우 4억9076만5000달러로 0.08% 증가하는 데 그쳐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의약품 수입액이 수출액보다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의약품에 대한 국내 수요가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에 있던 생산라인을 중단하거나 아예 철수한 게 주 요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1999년 다국적 제약사 바이엘이 구리공장을 폐쇄한 이후 지난해까지 총 10개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에서의 생산을 중단하거나 공장을 아예 폐쇄하고 해외에서 생산한 제품들을 국내에 들여와 판매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2005년 항생제 생산라인을 매각한 한국GSK는 지난해 영국 이탈리아에서 제품을 수입해 판매했으며,작년에 국내 공장을 철수시킨 한국 화이자의 경우 미국 독일 호주 등 세계 각지에 분포된 생산 기지에서 제품을 들여오고 있다.

◆수입의약품 규제 완화도 한몫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에 있던 생산기지를 이처럼 잇달아 철수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고임금과 노사 갈등 등으로 한국이 더 이상 생산 기지로서의 이점을 상실했기 때문으로 업계에서는 풀이하고 있다.

한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는 "한국의 인건비가 갈수록 상승한 탓에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의약품을 생산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인식이 다국적 제약사들에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수입 의약품에 대한 규제 완화도 다국적 제약사들의 한국 '탈출'에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과거 수입의약품과 국내생산 의약품에 대한 차별이 있었을 때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며 "그러나 1999년에 수입 의약품도 건강보험 급여 지급대상에 포함되는 등 규제가 점차 완화되면서 그 이유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