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분기 이후 14분기 연속 흑자 행진,지난해 당기 순이익 2조120억원 등 괄목할 만한 경영 성과를 일궈낸 우의제 사장의 갑작스런 사의 표명으로 하이닉스반도체는 당분간 적지 않은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회사 안팎에서는 공장 증설,기술 개발 등 신규 투자와 관련한 경영 현안이 산적한 상태에서 우 사장이 사임할 경우 완성 단계에 접어든 '하이닉스 부활 신화'가 역풍을 맞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는 우 사장의 리더십과 경영 능력을 대체할 만한 인물을 사내외에서 당장 찾기가 쉽지 않다는 '대안 부재론' 때문이다.

우 사장은 반도체 전문가는 아니지만 금융 최고경영자(CEO) 출신답게 절묘한 완급 조절 관리로 임직원들이 주어진 목표에 '올인'하도록 하는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 왔다는 평이다.

뿐만 아니라 2000년 이후 해외매각 시도와 좌절,워크아웃에 이은 구조조정 등 무수한 고초를 겪었던 하이닉스반도체 임직원들에게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해 온 인물이어서 그의 공백은 더욱 크게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후배 위해 용퇴,결심 굳혔다'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우 사장의 사임이 결정될 경우 하이닉스 내부는 상당 기간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우 사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위기를 극복해 온 임직원들의 동요가 예상 외로 클 것이라는 관측이다.

동시에 이 같은 난맥상이 D램 세계 2위,낸드플래시메모리 세계 3위를 구가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의 앞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우려도 없지 않다는 전망이다.

지금으로서는 우 사장이 사임 의사를 철회할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뿐만 아니라 주 채권은행에까지 일괄적으로 사의를 밝혔기 때문이다.

하이닉스의 한 사외이사는 "사의를 밝히는 우 사장의 표정이 상당히 결연했다"며 "'후배들에게 길을 터 주기 위해 용퇴하겠다'는 결심을 바꿀 것 같지 않다"고 전했다.

◆새 CEO 선임 놓고 외풍 우려

우 사장이 이사회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임 의사를 굽히지 않을 경우 최대 주주인 채권단은 오는 3월 주총에서 하이닉스의 새로운 CEO를 선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우 사장의 3연임을 기정 사실화하며 느긋하게 주총 준비를 하고 있던 채권단으로서는 뜻하지 않은 난제에 봉착하게 된 셈이다.

문제는 우 사장을 대체할 만한 인물이 있느냐 하는 것.하이닉스반도체가 시가 총액 14조원이 넘는 거대 기업이라는 점,채권단이 절대 지분을 갖고 있어 사실상 '주인 없는' 회사처럼 운영된다는 점,연간 2조원 안팎의 수익을 올리는 우량 기업이라는 점 등의 요인으로 인해 CEO 자리를 노리는 인물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직 관료나 정치권 인사들이 기웃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반도체 업종이 투자 판단과 경영전략 실행에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외부 인사를 함부로 앉힐 수도 없는 여건이다.

우 사장이 사의를 표하면서 적절한 후임자를 추천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사회의 발언 내용으로 짐작해 볼 때 우 사장이 내부 인사를 선호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올 수 있다.

어쨌든 우 사장 후임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하이닉스가 자칫 외풍에 시달릴 경우 어렵게 이뤄놓은 경영 정상화의 초석이 흔들릴 수 있을 것으로 채권단은 우려하는 분위기다.

만약 외부에서 권력을 등에 업고 '낙하산 입성'을 시도할 경우 노사 관계가 요동 치고 향후 경영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