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 존슨앤드존슨의 제약사업 부문인 한국얀센의 최승희 주임(28).

올해로 입사 5년차.웬만한 직장에선 아직 일을 배울 나이다.

하지만 지난해 영업실적이 가장 좋은 '스타 영업사원'으로 뽑혔다.

부상은 거의 연봉수준인 1150%의 보너스와 4박5일 해외여행.최 주임은 "요즘 제약분야에서 잘나가는 영업사원들의 상당수는 여성"이라며 "남성보다 꼼꼼하고 세심해 제품에 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고객의 까다로운 요구를 세련되게 거절하는 능력도 뛰어나다"고 말한다.

제약분야는 '영업부문의 메이저리그'로 불린다.

입맛이 까다로운 의사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접대가 많고 체력적인 부담도 커 2000년 이전에는 여성들이 발붙이기 힘든 분야로 분류됐다.

그런 남자들만의 철옹성은 최근 6~7년 새 완전히 무너졌다.

일례로 한국얀센에는 최 주임과 같은 '알파걸 영업사원'이 수두룩하다.

최 주임이 속해 있는 부서의 영업액 랭킹 1~2위가 모두 여자다.

홍봉표 한국얀센 인사팀장은 "2001년만 해도 영업분야 신입사원의 10% 정도만 여성을 뽑았지만 지난해에는 40% 이상을 여자로 뽑고 있다"며 "영업사원이 갖춰야 할 적극성과 프레젠테이션 능력 등 모든 분야에서 여성 지원자가 월등하며 실제로 뽑아봐도 더 높은 성과를 낸다"고 말한다.

한국형 알파걸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교사나 공무원 합격자의 숫자에서 여성이 남성을 앞질렀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기업의 영업직이나 법조계,공과대학 등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강세를 보였던 분야에도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성적에 이어 사회성 측면에서도 여성이 남성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법조계는 최근 1~2년 새 여성들이 '왕좌'를 탈환한 대표적인 분야로 꼽힌다.

사법고시 합격자 비율은 여성이 37.73%(2006년 최종합격자 기준)로 남성보다 적다.

하지만 연수원 성적이 뛰어난 상위권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사법연수원에서는 여성이 수석을 차지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다 보니 '남자수석'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예비 법조인들이 여풍(女風)을 절감하는 것은 판사임용결과가 나올 무렵이다.

지난해 사법연수원 졸업생 중 최상위권만 모인다는 서울 경기지역 판사임용 결과 18명의 신임 판사 중 16명이 여성이었다.

올해도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으로 보이자 대법원 내에서는 성비를 맞추기 위한 '어포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소수자 우대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이재구 사법연수원 교수는 "여자 연수원생들의 성적이 좋아 교수들 사이에서도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느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고 설명했다.

대학도 여학생들이 점령한 지 오래다.

학점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을 앞도한 것은 이미 10여년 전의 얘기.지금은 학생회장,동아리회장 등 강한 사회성을 요구하는 자리도 여학생 차지가 됐다.

남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카이스트(KAIST)의 응원단 '엘카'가 대표적인 예다.

2007년 엘카 단장으로 뽑힌 산업디자인과 3학년 박성희씨(21)는 "남성 단장이 크고 힘찬 동작을 하는 가운데 양 옆의 여성단원 두 명이 보조를 하는 것은 옛날 일"이라고 말했다.

성영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53)는 "얌전하게 성적관리만 잘하던 여학생들이 점점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공모전,교환학생,동아리 활동 등 학업 외의 대외활동을 열심히 하는 학생들의 성비를 살펴보면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많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초·중·고교 교육현장의 상황을 감안할 때 알파걸 신드롬은 점점 더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비 알파걸들의 전력을 점검해 보면 성적과 사회성 측면에서 여학생들의 성취가 남학생들을 압도한다는 것.

남녀공학인 서울 구로고에서 영어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심정은씨는 "전교 1등을 비롯한 상위권을 여학생들이 휩쓸다 보니 남자아이를 둔 학부모들이 내신성적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시험을 몇 번 보고 전학을 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남녀 합반을 하자는 말이 나오면 남학생 학부모들이 나서서 반대한다"고 털어놨다.

전문입시학원인 대성학원의 이영덕 평가이사는 "여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는 능력이 특히 뛰어나기 때문에 구술 면접 시험에서 남학생들을 압도한다"며 "남학생들은 시험 중심의 정시를,여학생들은 구술·면접이 중심이 되는 수시에 응시하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미란 서울 A초등학교 교사는 "학생 회장 선거를 할 때나 영어경시대회 참여자를 보면 대다수의 학생들이 여자들"이라며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에게 기를 펴지 못해 걱정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송형석·문혜정·김현예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