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다'라는 말이 있다. 뜻은 많다. '시원시원하다,구질구질하지 않다,대범하다,뒤끝 없다' 등. '부담스럽지 않다,껄끄럽지 않다,참견하지 않다,신경쓰지 않다'로도 쓰인다. 쿨하자면 '죽자 사자' 하던 사람이 "그만 만나자" 해도 "왜 그래?" 묻고 매달리는 대신 "그러지 뭐" 한마디로 끝내야 한다.

궁금한 게 있어도 무심한 척 넘어가고,일러주고 싶은 게 있어도 꾹 참고,속상하거나 싫어도 내색하지 않아야 한다. 문자 그대로 선선한 척 차가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슴 속에 분명한 금을 그어야 한다. 어떤 마음도 넘어가고 넘어오지 못하도록. 열정이나 자기 희생같은 건 접든지 잊는 게 좋다.

'너나 잘하세요'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니 맘대로 하세요'와 함께 농담처럼 쓰이던 이 말이 뜬 건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이영애)가 "다신 죄짓지 말라"는 전도사에게 내뱉은 뒤부터. 너나 잘해라 하는 순간 아무도 더 이상 개입할 수 없다. '너는 어떤데'라고 되받아칠 때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간섭하지 말라는 건 간섭하지도 않겠다는 얘기다. 이들의 경우 어떤 일에도 열 올리는 법 없이 냉소·방관주의로 치닫는다. 나 아니면 남이므로 '우리'라는 개념은 발 붙일 곳 없다. 남북의 흐름이 얼추 같은가. 남쪽의 영화와 드라마가 유입되면서 북한 젊은층 사이에 "너나 걱정하세요"가 퍼진다고 한다.

조언이나 충고에 지적이 포함된 것도 사실이다. 때로 위선이나 가면 치레일지도 모른다. 자기 잣대로 남을 판단하거나 재단하는 게 우스울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모든 조언이 위선인 건 아니다. '죄짓지 말아라''조심해라'에 대해 '너나 잘해''너나 걱정해' 한다면 세상은 악다구니 판이 될 것이다.

'너나 걱정하라'고 쏘아붙이는 건 어쩌면 불신과 외로움의 표현일지 모른다. 외로움은 두려움,두려움은 분노,분노는 증오,증오는 파멸을 부른다고 한다. 믿기 힘들어도 믿어보려 애써야 외롭지 않다. 조언하면 받고 걱정해주면 고마워하자. 인간관계에서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라 무한대일 수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