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걸 세상] (中) 장애물이 줄었다 ... 달라진 기업문화가 알파걸 키운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CJ홈쇼핑에서 가구와 생활소품을 구매하는 최유정MD(29ㆍmerchandiser)는 사내에서 대표적인 '알파걸'로 꼽힌다.
지난해 부문별 매출 집계에서 남성들을 제치고 150여명의 MD 중 전년대비 증가률이 가장 높은 '베스트 MD상'을 거머쥐었다.
'거친 협상'이 일상화된 MD업무가 여성으로서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최씨는 "최근 들어 술을 과하게 먹어야 하는 접대문화가 사라지고,회사측도 숫자로 드러나는 성과에 따라 평가를 해줘 전혀 어려움을 못 느낀다"고 답했다.
학업과 업무, 인간관계 및 리더십 등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남성을 압도하는 '알파걸'. 전문가들은 알파걸을 탄생시키는 핵심 요인 중 하나로 달라진 기업문화를 꼽는다. 기업간 거래가 투명해 지면서 과도한 비용이 드는 접대성 '물밑거래'가 크게 줄었다는 분석이다. 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여성들 입장에서는 발목을 잡고 있던 '덫'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체력이 약한 여직원의 '적'이었던 야근도 점차 옛 일이 되고 있는 추세다. "칼퇴근도 좋다,성과만 내라"는 식으로 간부들의 태도가 바뀌고 있는 것.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비율이 30%를 넘는 등 젊은층의 이직률이 늘어나는 것도 알파걸에게 유리한 여건이다. "남자를 뽑아도 연봉과 장래성 등을 이유로 금세 이직하는 상황인데 '일을 배울만하면 결혼 출산 등의 이유로 회사를 비운다'는 구실로 여직원 채용을 손사래칠 인사담당자.가 어디 있겠느냐"(정유민 잡코리아 상무)는 설명이다.
여기에 객관적인 잣대를 중시하는 기업들의 투명한 인력선발 방식,여성성과 감성을 중시하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A학점과 탁월한 어학능력으로 무장한 알파걸의 사회진출을 한층 가속화 시키고 있다.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지만 그동안 '공대 출신 남성'을 선호한다고 알려졌던 삼성전자도 최근 신규채용인력의 30%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이 이런 추세를 잘 보여준다.
알파걸의 등장에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은 역시 든든한 부모들의 후원. 10~20대 연령층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알파걸'들은 부모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특히 알파걸들의 엄마는 상대적으로 지금보다 남녀차별이 심했던 1960~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자녀만큼은 자신이 받은 교육과 전혀 다른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사회에서 남성과 경쟁하는 데 여성이라고 전혀 불리할 것은 없다. 얼마든지 싸워보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앞세워 딸들을 키운다.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연구센터 이성은 박사(38)는 "일하는 엄마를 둔 딸은 자신이 직업을 갖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전업주부 엄마를 둔 딸은 엄마의 '보상심리' 때문에 일찍부터 경제적 자립의 중요성을 교육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권위있는 가장에서 벗어난 부드러운 아버지들도 알파걸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친근한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알파걸들은 남성과 동등하게 겨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도전정신과 강한 의지력,추진력 등 기존의 '남성성'이라고 일컬어지던 요인들을 전수받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치과의사인 어머니와 지방대학 교수 아버지를 둔 김수정씨(20·고려대 언론학부2년)는 "아빠는 무척 가정적이며 딸들의 의견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준다"며 "이런 아빠에게 늘 내 의견을 얘기하고 함께 토론하면서 나도 모르게 자만하지 않는 '엘리트의식'이나 '자부심'같은 것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문혜정·송형석·김현예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