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최대 PC 업체로 도약했던 미국 델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지난주 최고경영자(CEO) 케빈 롤린스 사장을 해임하고 경영 일선에 복귀한 델 창업자 마이클 델 회장(42)이 임직원에게 잇따라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델 회장은 CEO를 해고한 직후 '세계 PC 시장 1위를 탈환하라'고 독려했다.

지난 2일엔 '올해 보너스는 없다''낭비요소를 제거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임직원에게 보냈다.

창업자가 경영 일선에 복귀해 목청을 높이는 것은 회사가 비틀거리기 때문이다.

델은 지난해 3분기 휴렛팩커드(HP)에 세계 PC 시장 점유율 1위를 내줬다.

4분기에는 HP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시장조사 전문업체인 IDC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델은 점유율이 14.9%로 추락해 1위 HP(18.4%)와의 격차가 3.5% 포인트로 벌어졌다.

3분기 17.0%로 17.1%의 HP에 2003년 이후 처음 1위를 내주고 나서 더 떨어졌다.

델은 한국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HP는 한국 PC 시장에서 1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LG전자 삼보컴퓨터 등과 2위를 다툰다.

그러나 델은 점유율 4~5%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데스크톱에선 삼성전자 주연테크 HP 등에 이어 6위에 불과하다.

노트북에서는 삼성 LG HP 도시바 후지쓰뿐 아니라 삼보 레노버 등에도 뒤진다.

IDC가 분석한 지난해 4분기 점유율 자료에서는 '기타'로 분류되는 수모를 당했다.

델이 한국에서 고전하는 것은 '싸구려 이미지'와 애프터서비스(AS)에 대한 소비자 불만 때문이다.

델 측도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델코리아 대표로 취임한 김인교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싸구려 이미지를 벗겠다"고 선언했다.

델이 최근 서울 용산에 AS센터를 차린 것도 AS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줄이기 위해서다.

세계 40여개 국가에 진출한 델이 오프라인 AS센터를 설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델코리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국에서 AS에 대한 불만이 많이 제기됐다"며 "시장 현실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델은 소비자에게 직접 주문을 받아 판매하는 방식으로 급성장했다.

한국 시장에서는 말레이시아에서 생산한 PC를 중국 콜센터에서 조선족을 통해 주문을 받아 판매하고 AS는 외부 전문업체에 맡겼다.

이 방식이 한국에선 통하지 않았다.

1996년 한국에 진출해 11년째를 맞은 지금도 마이너 업체에 불과한 것은 이 때문이다.

델은 '싸구려' 이미지를 벗기 위해 뒤늦게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PC업계 관계자는 "델코리아가 4~5%라도 차지했던 것은 가격이 싸다는 이미지 때문이었다"고 지적했다.

델은 과연 세계 최대 PC업체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