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시대에 정유회사를 곱게 보는 일반 소비자는 별로 없다. '기름값을 올릴 때는 비호같이, 내릴 때는 거북이처럼'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이 도매가 책정 시스템을 일부 공개해 가격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소비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정유업계는 요즘 고민을 얘기해봐야 '응원군'을 찾기 힘들다. 지원군은커녕 여기저기서 달려드는 맹수에 포위 당한 꼴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7일 전원회의를 열어 정유업체에 많게는 수백억원씩의 과징금을 매길 태세다. 2년 반 동안 샅샅이 조사했지만 뚜렷한 증거를 못찾고 '추정 담합'으로 결론 내렸다는 소문이다. 정제 마진 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정유업체에 거액의 과징금은 결정적이다.

정유사의 시름은 또 있다. 최근 산업자원부는 '2007년 석유수요 전망'에서 올해 휘발유 판매량이 이례적으로 0.1%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 이유로 유사휘발유(일명 세녹스) 범람을 꼽았다. 대책을 내놔도 시원찮을 소관 부처가 유사휘발유의 불법유통을 버젓이 인정해버린 꼴이 됐다.

기름값이 오르자 소비자들은 ℓ당 900원대 하는 유사휘발유를 넣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유사휘발유는 제조원료인 솔벤트 시너 등에 세금이 전혀 붙지 않아 ℓ당 865원이 매겨지는 휘발유보다 싸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약 7억ℓ의 유사휘발유가 국내에서 유통된 것으로 추정했다. 연간 세금탈루액만 6000억원을 웃돈다는 계산이다. 재정경제부는 한때 솔벤트 시너 등 용제에 교통세를 물리고,사용처를 증빙할 경우 세금을 돌려주는 내용의 교통세법개정안을 발의했었다. 그러나 이 논의도 유사휘발유를 합법화시킨다는 논리상 모순에 중단됐다.

산자부는 지난 2일 유사석유제품을 산 소비자도 처벌키로 하는 후속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판매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데다,유류판매 사업자가 솔벤트 등 원료를 합법적으로 산 뒤 웃돈을 받고 무자료 거래를 하는 실정이어서 처벌범위를 소비자로 확대한다고 단속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실효성 있는 근본대책이 아쉽다.

손성태 산업부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