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장하성펀드(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가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파죽지세로 속속 상장사 경영진들의 백기투항을 받아내던 장하성펀드가 8번째 투자 기업인 벽산건설을 만나 대립각을 세웠다.

벽산건설 대주주의 지분 무상 소각 등을 요구하자 벽산건설측이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동안 잠잠하던 장하성펀드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장하성펀드가 승승장구하더니 이제는 요구 사항이 상식 수준을 넘어섰다"는 의견과 "대주주의 이익 편취를 막으려는 것으로 벽산건설의 지배구조 개선의 일환"이라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 장하성펀드 vs 기업 갈등 재연

5일 장하성펀드를 운용하는 라자드에셋매니지먼트는 공시를 통해 벽산건설 지분 5.4%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장하성펀드가 공개한 8번째 투자 기업이다.

하지만 그동안 비교적 장하성펀드의 요구안을 순순히 받아들이던 다른 기업들과 달리 벽산건설은 거부의 뜻을 나타냈다.


펀드의 요구안이 상식 밖이라는 이유에서다.

장하성펀드는 "벽산건설 최대주주인 ㈜인희가 부당 내부거래를 통해 이익을 편취했다"며 "㈜인희는 벽산건설주 553만주(20.1%)를 무상 소각하고 벽산건설과의 거래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장하성펀드가 추천하는 사외이사의 선임도 요구했다.

㈜인희는 김희철 벽산그룹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지분 75.9%를 갖고 있는 개인 기업으로 건자재 및 부동산사업을 주로 하고 있다.

벽산건설측은 "㈜인희는 벽산건설측에 적정 수준에서 건자재를 납품해왔다"며 "2대주주인 KTB네트워크와 협의를 통해 경영진도 투명하게 선임해온 만큼 장하성펀드측의 요구를 납득하기 힘들다"고 반박했다.

현재 벽산건설은 ㈜인희가 지분 52.10%를,KTB네트워크가 8.8%를 보유하고 있다.

◆ 장하성펀드 오만해졌다?

업계에서는 장하성펀드가 평소와 달리 무리한 요구를 내세운 데 대해 내부거래에 따른 이익 편취에 대해 물증이 될 만한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앞서 태광산업 역시 장하성펀드의 요구 사항을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지배구조 문제가 언론보도 등을 통해 확대되자 결국 요구를 수용키로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태광산업의 백기투항과 이후 각 기업의 잇단 요구 수용에 따라 장하성펀드측이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해석이다.

벽산건설 지분을 지난해 4월부터 매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말께 갑자기 강력한 요구안을 내민 점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하지만 장하성펀드에 대한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다.

5% 남짓의 지분으로 벌써 7개 상장사의 경영권에 간여하는 등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벽산건설과의 갈등을 계기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장하성펀드가 성과에 고무되면서 지나치게 의욕을 가지다 보니 오만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사회책임투자펀드가 지분율에 비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간여할 경우 주주자본주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