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돌아보면 우리가 얼마나 불신 속에서 살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식품의 유효기간은 안전한지,공무원의 사무처리는 공명정대한지,논문을 보며 표절은 아닌지,의사 처방은 제대로 됐는지,과연 교사가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이제는 불신이 도를 넘어 편집증(paranoia)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상대를 믿지 못해 과도하게 집착하고 망상을 갖는 데서 오는 현상이다. 편집증은 의심과 증오가 따르고 급기야는 폭력으로 이어진다. 진실되게 설명해도 그 뒤에는 무엇인가가 숨어 있을 것으로 의심한다. 거짓말을 한다고 믿는 것이다. 부부 간의 의부증이나 의처증이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최근 정통부의 자료는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동통신 업체들이 과거 2년 동안 불법으로 저질러 온 '개인 위치추적 서비스' 중 상당수가 부부관계인 상대방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가장 신뢰해야 할 부부 사이가 어느새 불신의 장벽으로 막혀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는 영업사원 관리의 일환으로,사채업자들은 채무자를 찾기 위해 불법으로 소재지 추적에 나선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은 따지고 보면 "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심리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지난 12월,KDI가 발표한 '사회적 자본실태 종합조사'를 봐도 '타인에 대한 일반적 신뢰도'는 선진국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국가기관은 물론이고 이웃조차 믿지 못한다는 총체적인 불신사회를 여실히 드러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불신이 커지면 사회 전체의 불안감이 팽배해지고 투명성이 낮아지게 마련이다.

현대인들은 도시화로 인해 서로 간의 사이가 좁아져 어쩔 수 없이 부대끼고 충돌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런 까닭에 서로를 경계하는가 하면 적개심이 활개를 친다.

실리보다는 인정을 우선하고,돈보다는 신뢰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는 우리 모두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인데,위치 추적과 같은 불법적인 일을 거두어 내는 일도 그 중 하나일 게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