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가전의 시장 확대를 예상해 급증했던 일본 전기·전자업계의 설비 투자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수년째 경기 회복을 이끌어온 제조업체들의 설비 투자가 줄어들면서 일본 경제 성장세가 한풀 꺾일 것이란 전망도 나오기 시작했다.

히타치제작소는 800억엔을 투입해 2008년까지 건설하기로 했던 PDP 신공장 계획을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고 6일 밝혔다.

이 회사는 PDP TV 등 주력 가전사업 부진으로 작년 10∼12월 순익이 전년 동기 대비 77% 감소한 12억엔에 그쳤다.

미요시 다카시 부사장은 기자회견에서 "가격 추이와 수요 동향을 좀더 지켜본 뒤 공장 건설 시기를 결정하겠다"며 "TV사업은 질로 승부하겠다"고 밝혔다.

파이어니어는 지난달 말 야마나시현에 30억엔을 들여 PDP 신공장 건설 부지를 확보했으나 착공 시기를 연내에서 내년 이후로 늦췄다.

회사 관계자는 "200억∼300억엔을 투입,패널 생산 능력을 연간 97만장에서 130만장으로 늘릴 계획이었으나 투자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연기 배경을 설명했다.

가전뿐만 아니라 반도체 메이커들도 신공장 건설 계획을 잇달아 보류하고 있다.

도시바는 1월 말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 등 기억 장치에 사용하는 낸드형 플래시 메모리의 국내 신공장 착공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후지쓰도 4월부터 가동하는 미에현 LSI(대규모 집적회로) 신공장의 설비 확장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설비 투자 경쟁을 벌여온 전기·전자 회사들이 신공장 건설 억제로 방향을 바꾼 것은 국내외 메이커 간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시장 조사 회사인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작년 10∼12월 세계 PDP 출하액은 처음으로 전년 동기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PDP 평균 가격(42인치 기준)도 670달러로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는 월드컵과 같은 대형 국제 스포츠 이벤트가 없고 베이징올림픽 수요는 내년 초부터 시작될 것이란 분석도 업체들이 설비 증설을 자제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슬림형 TV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면 가전 메이커들의 설비 투자 감속 움직임이 확산돼 부품 및 소재 업체에까지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 "설비 투자 위축은 경기 회복세에도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