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暎浩 < 성신여대 교수ㆍ국제정치학 >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이후 진행되어 온 미 행정부와 의회 내의 주요 정책 결정 라인의 인선(人選)이 최근 마무리됐다. 이번 새판짜기가 미국의 대외정책과 한반도 정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정치권의 판도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안은 이라크전쟁이었다. 이라크 점령 이후 미국의 개전(開戰) 명분이었던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정보는 허위였음이 드러났다. 미군 사망자 숫자는 3000명을 넘어섰지만 이라크사태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미국민의 이라크전쟁 지지도는 겨울 워싱턴의 수은주만큼이나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부시 대통령은 미군 2만1500명의 증파(增派)를 결정하면서 이라크에서 조만간 철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번 행정부의 새로운 라인업은 부시 대통령의 이러한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임 국방장관에 CIA국장을 지냈던 로버트 게이츠를 임명한 것이라든지, 신임 국무부 부(副)장관에 존 네그로폰테 전 국가정보국장을 임명한 것은 이라크전쟁 직전 정보분석 및 판단 오류에 대한 대내외 비판을 다분히 의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와 차기 대통령 후보들이 이라크전쟁 조기 종식과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는 시점에서 부시의 대(對)이라크 정책이 얼마나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행정부의 새로운 라인업은 그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딕 체니 부통령의 영향력 쇠퇴를 의미한다. 루이스 리비 전(前) 부통령 비서실장이 연루된 '리크게이트'의 재판 결과는 체니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대북(對北) 정책의 주요 결정들이 강경노선을 취해온 체니의 영향 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에 일정한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북핵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몸놀림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것은 대북정책 결정의 무게 중심이 백악관 부통령실에서 곤돌리자 라이스 장관이 이끄는 국무부로 이동한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 내 대북 협상파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북한이 핵폐기라는 전략적 결정을 내릴 경우 6자회담의 전망은 매우 밝아질 것이다. 미국은 6자회담 밖에서 북·미 양자회담을 함으로써 이미 회담 형식에서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과거 부시 행정부에서는 체니의 반대로 생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와함께 미국은 동결된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 계좌 일부 해제와 대북 중유 지원과 같은 당근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당이 장악한 미국 상하 양원의 주요 외교·군사위원회의 위원장들은 모두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협상을 통한 외교적 노력을 줄곧 강조해온 인물들로 채워졌다. 대북 강경파의 입김이 약화되고 협상파의 목소리가 강화되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협상 방식 및 수단과 관련된 문제에 국한될 뿐이다. 미국 행정부와 새 의회는 모두 북핵의 완전폐기라는 정책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6자회담을 통해서 북핵 폐기에 뚜렷한 진전이 없을 경우 미국 내 협상파들의 입지는 또다시 약화될 것이다. 6자회담 무용론(無用論)의 대두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민주당 주도의 새 의회는 북한 인권 문제에 커다란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2004년 의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은 향후 북한과의 모든 협상에서 인권 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 의회는 북핵 협상이 핵과 경제지원의 단순한 교환이 아니라 안보 경제 인권 문제가 동시적으로 고려되는 다차원적 방식으로 6자회담이 발전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최근 미국 정치권의 판도 변화가 우리의 국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