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기술을 위해 인간의 창작물을 갈아 넣었다. 윤리적 판단도 함께. 최근 미국 인공지능(AI) 기업 앤스로픽이 수백만 권의 실물 책을 구매해 낱장으로 잘라낸 뒤 스캔해 AI에 무단 학습시킨 사실이 폭로됐다. 이른바 '프로젝트 파나마'다.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 모든 책을 파괴적으로 스캔한다"는 내부 문서도 공개됐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처럼 대량의 정보를 막힘 없이 흐르게 하겠다는 야심은 혹시 갑문의 제어 없는 파괴적 급류인 걸까. 견제되지 않는 기술 권력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중일까.최근 국내에 출간된 <AI 제국: 권력, 자본, 노동>은 오픈AI로 대표되는 기술 기업들을 '제국'에 비유하며 그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보는 책이다.저자 카렌 하오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로 챗GPT가 돌풍을 일으키기 전인 2019년 오픈AI를 최초로 심층 취재한 인물이다. 이후 AI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도해온 하오는 오픈AI 전·현직 직원을 포함해 약 260명과 총 300회 이상 인터뷰하고 수많은 문건을 검토한 끝에 이 책을 썼다. 저자 또는 팩트체킹팀이 당사자에게 해당 대화 내용을 몇 개월 간격으로 반복하거나 확인해 달라고 요청해 기억이 확실한지 검증했다.책은 인류가 기술의 진보에 환호하는 사이에 후순위로 미뤄둔 환경적, 사회적 비용 문제를 꺼내 든다. 오늘날 기술 기업은 마치 식민지 시대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피식민지의 천연자원을 수탈하듯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무단으로 채굴한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물과 전력을 소비한다.오픈AI의 자체 시험에 따르면 GPT4가 80% 이상의 정확도로 지원하는 언어는 전체의 0.2%에 해당하는 15개 언어에 불과하다. 반면
1829년 여름, 갓 스무 살이 된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은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역마차에 올랐다. 약간은 긴장했던 런던 일정이 끝나고 이제야 진정 원하는 여행길에 나선 참이었다. 그가 가려는 곳은 런던에서 600km 이상 떨어진 스코틀랜드였다. 유럽에서는 물론 영국 안에서도 변방인 곳이었지만 멘델스존은 어린 시절부터 이 북쪽 지방을 동경해왔다. 역마차를 갈아타고 가야 하는 먼 길도 젊은 여행자에게는 고되게 느껴지지 않았다.함부르크 태생의 멘델스존은 음악계 전체에서도 손꼽을 만한 ‘금수저’였다. 그의 할아버지 모제스 멘델스존은 독일어권 전체에 명망을 떨친 철학자였고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은 크게 성공한 은행가, 어머니 레아는 다섯 개 언어에 유창한 지성인이었다. 남부러울 데 없는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난 멘델스존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빼어난 재능을 보였다. 여섯 살 때부터 누나 파니와 함께 피아노를 배웠고 아홉 살에 연주회 무대에 섰으며 열세 살에 피아노 4중주를 작곡했다.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부모는 음악가의 길을 적극 밀어주기로 작정하고 작은 오케스트라를 조직해서 선물했다. 열두 살이 된 해에 멘델스존은 집안의 주선으로 대문호 괴테를 만났다. 괴테는 “요즘은 신동이 예사롭지 않지만, 이 아이는 정말 특별하군!”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괴테는 멘델스존에게 어른이 되면 이탈리아로 ‘그랜드 투어’를 가서 견문을 넓히라고 조언했다. 괴테는 일찍이 이탈리아에 2년 가까이 머물며 많은 영감과 창작의 열정을 얻었고, 이 경험을 ‘이탈리아 기행’에 담았다. 멘델스존은 공손한 태도로 대작가의 말씀을 경청했
2025년 여름이었다. 나는 영국 남부 도시의 미술관에서 사무라이 갑옷과 일본 미술품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사무라이 갑옷은 이국적이었다. 갑옷이 낯설어서가 아니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풍으로 꾸민 미술관이 주는 분위기 탓이었다. 다른 아시아 박물관에서 그 갑옷을 보았다면 큰 감흥 없이 지나치지 않았을까? 빅토리아 시대 인테리어 안에서 마주친 중세 일본 갑옷은 유독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이 가진 시선으로 갑옷과 일본 미술품을 관람하게 되었다.사무라이 갑옷을 마주한 곳은 영국 본머스에 위치한 러셀 코츠 미술관(Russell-Cotes Art Gallery and Museum)이다. 이 미술관은 한 남자의 병에서 비롯되었다. 100여 년 전 기관지염을 심하게 앓던 영국 신사는 색다른 처방을 받았다. 더 따뜻한 도시로 이사 가라는 처방이었다. 약만으로는 병을 떨쳐내기 어려울 정도였던 모양이다. 이미 중년이던 사내는 의사가 내린 처방에 따라 영국 남부 해안 도시 본머스(Bournemouth)로 이사했다. 그리고 남은 생을 그곳에서 보낸 뒤 이 미술관을 남겼다.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은 머튼 러셀 코츠(Merton Russell-Cotes, 1835~1921)이다.본머스는 영국인이 사랑하는 휴양 도시이다. 머튼은 본머스에서 로열 배스 호텔(Royal Bath Hotel)을 운영했다. 호텔 경영은 성공적이었다. 많은 유명인이 그의 호텔에 머물렀다. 훗날 에드워드 7세가 되는 웨일스 공(Edward VII, 1841~1910)과 유미주의의 대표주자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 그리고 배우 헨리 어빙(Sir Henry Irving, 1838~1905) 같은 인사가 호텔을 찾았다. 호텔을 경영해 상당한 부를 쌓은 머튼은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간 곳에 집을 지었다. 66번째 생일을 맞은 아내